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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 시산제(始山祭) 산행기
2020.03.13 Views 150 박성원
일시 : 3월 28일
장소 : 북한산 장군바위
참석 : 박찬익 회장, 김경미, 김경희, 김현호, 김호중, 박경미, 박성원, 박연, 박진환, 박찬영, 부길만, 오상환, 이범만, 이정수, 이정일, 임순재, 장정화, 정민영, 채호기, 천승배, 최태경, 허영심, 허진, 허창성, 홍사룡(성명 가나나순)(계 25명)
1. 시산제 의미
시산제는 산악회에서 매년 3월 초부터 말까지 좋은 날을 택해 일정한 장소에서 음식과 막걸리를 차려놓고 명산대천을 찾아 산행을 시작함에 있어 자연의 훼손을 방지하고 안전과 행복을 염원하면서 회원들의 친목과 결속을 다지기 위해 전 회원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의식을 거행하는 전통문화 행사이다. 봄이 시작하는 3월에 시산제(始山祭)를 거행하면 가을의 막바지인 11월에는 종산제(終山祭)를 시행하기도 한다.
2. 시산제 유래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산악회가 주최하는 시산제의 시초를 『월간 사람과 산』에서는 “산악계에 시산제가 자리 잡게 된 것은 1971년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이 ‘설제(雪祭)’를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게 통설이다. 서울시연맹은 1회 설제를 71년 2월 첫째 주, 명성산에서 실시했으며 다음해인 72년에는 2월 첫째 주 운길산에서 지냈다. 이원직 회장 재임 시 시작된 이 설제는 산악인을 대표하는 연맹으로서 산악인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연맹 산하 단체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설제`는 초창기에 1천여 명의 회원들이 모였다.”고 설명해 놓았고, 『월간 산』은 2020년 3월호에서 ‘설제(雪祭)’의 의미와 영향을 “산악인을 대표하는 연맹으로서 산악인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연맹 산하 단체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행사가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지며 자리를 잡았고 반응 역시 좋았다. 이후 유행처럼 각급 산악회로 퍼지며 우리나라 특유의 산악문화로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하여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최초의 시산제로 ‘설제(雪祭)’가 정설로 굳어지기 하였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1966년 시작된 설악제가 시초라는 것이다. 『월간 산』 2020년 3월호의 기사를 보면 “산에서 올리는 제가 하나의 행사 형태로 구현된 것은 1966년 시작된 설악제가 시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 행사는 설악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설악산악회, 예총 속초지부, 속초시 공보실의 공동 주관으로 치렀다. 속초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산악인 이기섭 박사가 설악산을 알리기 위해 기획한 행사로 등반대회와 접목한 향토축제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하여 이견을 밝히고 있다. 시산제의 태동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는 있지만 요즘의 시산제와는 다른 개념으로 시작되어 시산제로의 시초로 보지 않는다. ‘설악제(雪嶽祭)’는 설악산의 홍보와 대회에 집중한 축제의 의미와 형식으로 거행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설악제의 변천과정을 보면 확연하게 시산제와 개념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인용하면 “설악제의 시작은 설악산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시민들이 앞장선 홍보차원에서 개최된 산악문화행사로부터 출발하였다. 행사 내용은 전국 등반대회를 우선으로 하여 사진전, 미술전, 음악·무용의 밤, 횃불놀이, 취주악경연, 영화상영 등이었다. 산악행사에는 당시 전국의 100여 산악단체가 참가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제3회까지는 그대로 이어지다가 이후 행사 규모가 확대되면서 그 주도권이 예총에서 산악인들에게 넘어갔다. 제17회부터는 ‘시민의 날’ 행사와 병행하여 실시되면서 속초시가 주관하게 되었고, 제24회부터는 설악제위원회가 결성되어 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하게 되었다. 1996년 제30회부터는 명칭을 ‘설악문화제’로 변경하여 순수문화축제로 변화를 시도하였고, 제31회 행사부터는 체육행사를 지양하고 순수 전통민속 축제로 탈바꿈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여 주최권자와 의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의 시산제를 시초로 보는 시각이다. 『월간 사람과 산』에서는 “한국산악회 최선웅 총무이사는 시산제의 시초는 동국대학교 산악회에서 찾는다. 동국대학교 산악회가 1968년 신년 초에 북한산에 올라 돼지머리와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올린 게 시산제의 시초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최근의 시산제처럼 유교적 순서에 따라 축문을 읽고 소지를 하는 등의 의식을 치르지 않았지만 등반 중 사망한 악우들과 산신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고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산제로 보지 않는 이유로는 『월간 사람과 산』에서 “이 즈음 산악회들은 오늘과 같은 시산제 행사를 갖지 않았다. 다만 등반장비가 귀했을 때이므로 자일이나 텐트 등의 귀중한 장비를 구입한 후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비 앞에 술을 따라놓고 간단히 제를 올리는 일은 있었다.”고 하여 약소한 의식을 치루었을 뿐 요즘처럼 시산제로써의 절차와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3. 산행기
한국출판인산악회는 시산제를 매년 3월 초에 시행하였지만 2020년에는 3월 마지막 토요일(28일)에 시행하기로 집행부에서 결정하였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2020년 2월 중순부터는 한국에서도 창궐하게 되어 3월 말에는 잦아들 것이라는 예상하였기 때문에 3월 마지막 토요일로 연기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산제 당일까지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의 분위기로 시산제 장소로 산행 나온 시민들에게 눈총을 받을까? 또는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시산제(始山祭)는 한자의 뜻에서도 나타나듯이 산행의 시작함을 알리고 회원의 무사무탈한 산행을 염원하는 전통문화 행사이다. 그리고 한국출판인산악회에서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이다.
한국출판인산악회 시산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예년에 비해 간소하게 시행하기로 하였다. 총무인 제 입장에서는 한국출판인산악회 시산제에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고 준비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시산제의 준비에 소홀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면서 매우 꼼꼼하게 점검하고 또 점검하였다. 시산제 시행 1주일 전부터는 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전 회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고 카카오톡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공지하였다. 제가 일일이 회원에게 직접 통화를 하면서 시산제의 장소, 시간에 대해 설명하고 참석을 독려하였으며, 제가 통화하기 못한 회원에게는 박찬익 회장과 임순재 수석부회장에게 부탁하기도 하였다. 집행부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시산제 하루 전까지 20명 참석 예상을 25명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참석하여 주신 박찬익 회장을 위시하여 김경미, 김경희, 김현호, 김호중, 박경미, 박성원, 박연, 박진환, 박찬영, 부길만, 오상환, 이범만, 이정수, 이정일, 임순재, 장정화, 정민영, 채호기, 천승배, 최태경, 허영심, 허진, 허창성, 홍사룡(성명 가나나순)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산제에 사용한 제물과 용품은 회원에게 미리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돗자리와 생수는 회원 각자가 지참해 오도록 하고
제물은 박찬익(사과 5개), 임순재(배 5개), 이정수(대추 30개), 박연(곶감 20개), 정민영(밤 20개), 김호중(딸기 1팩), 부길만(단감 7개) 등에게
시산제 형식과 절차에 필요한 용품은 박찬익(의관, 의복, 현수막, 한국출판인산악회 기), 이정일(제문 및 식순) 등에게 부탁하여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그 외 제물과 용품은 제가 준비하기로 하여, 시산제 전날 홍제동 인왕시장에서 모두 주문하였다.
시산제 당일 오전까지 머릿속으로 시산제의 형식과 절차를 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준비에 빠짐이 없는지 점검하였다. 시산제 당일 오전에 박찬익 회장과 인왕시장에서 만나 최종적으로 준비물을 점검하고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후, 녹번역 2번 출구에 도착하니 12시 50분 이었다.

잠시 박회장과 준비 사항과 형식 및 절차에 대해 상의하던 중, 박찬영 회원이 도착하고, 장정화 회원이 도착한다. 이어 신승지류유통(주)에서 박진환 이사께서 시산제 선물로 수건을 들고 택시에서 내린다. 오후 1시 30분이 되니 모두 참석하였다. 역시 회원님의 시간 개념은 정확하였다.

오후 1시 30분 정각에 녹번역에서 출발하여 오후 1시 54분에 시산제 장소인 장군바위에 도착하였다.


많은 회원의 도움과 협조로 현수막을 걸고 한국출판인산악회 기를 매단 후, 제물을 차리고 보니 제법 형식을 갖춘 것 같았다.

시산제의 주요 인물인 초헌관(박찬익 회장), 아헌관(천승배), 종헌관(임순재 수석부회장), 축관(이정수 감사), 사회(박성원 총무) 등 5명이 의관과 의복을 갖추어 입는다. 좌집사는 박연, 우집사는 허진 회원이 봉사하였다. 전례는 이정일 고문이 선서는 정민영 전 총무가 맡기로 하였다.


오후 2시 20분, 전 회원이 집중한 가운데 총무인 제가 시산제 1부 행사를 알렸다. 초헌관인 박찬익 회장은 경건한 마음과 엄숙한 자세로 전례의 순서에 따라 원활하고 신중하게 진행하였다. 전례를 맡은 이정일 고문은 우리 산악회 회원 중에서 시산제의 개념부터 유래, 목적, 영향 등에 대해 너무 소상하게 잘 알고 계시기에 신중한 진행에는 빈틈이 없었다.
초헌관의 삼배가 끝나고 축관인 이정수 감사께서 특유의 목소리로 축문을 읽었다. 유세차~로 시작하고 상향으로 끝나는 10분 간의 축문은 축관의 목소리에 매료되고 진중함이 더해 갔다.


종헌관인 천승배 고문의 삼배에 이어 전 회원의 헌작으로 이어졌다. 전 회원의 숙연한 삼배는 시산제의 하이라이트를 이루고 있었다.







시산제의 1부 행사를 마치고 산악회 행사인 2부를 진행하였다.
먼저 돌아가신 산우님을 위해 묵념을 한 후, 산악인의 선서는 목청이 크고 볼륨이 높은 정민영 전 총무의 선창으로 힘차게 합창하였다.








오후 3시 50분,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후 4시 20분 제일 마지막으로 탕춘대성암문에 도착하니 전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일부 회원의 손에는 시산제에서 남은 용품과 쓰레기가 있어 더 이상의 산행은 불가하기 때문에 석식을 위해 ‘원조할머니두부’ 식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식당에서는 회원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한국출판인산악회에 대해 덕담, 소감, 계획 등을 묻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회원님들 말씀도 참 잘 하십니다. 토요산행에서 자주 얼굴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시산제와 예년에 있었던 시산제를 화제로 담소를 나누며 마시는 막걸리에서 나의 만족감은 배로 증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참석하신 모든 회원께서도 자존감과 자부심이 배로 증가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