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토요산행기

[1958회]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협곡 마천루 산행기

2021.07.08 Views 110 박성원

[1958회]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협곡 마천루 산행기

 산행 코스 : 두타산 매표소 – 베틀바위 산성길 입구 – 삼공암 - 베틀바위 전망대 - 미륵바위 – 산성 12폭포 – 협곡 마천루 – 쌍폭포 – 용추폭포 - 학소대 - 삼화사 - 금란정・무릉반석 - 두타산 매표소

 산행 일시 : 2021년 7월 3일 오전 11시 30분 ∼ 오후 4시 30분 (5시간 산행)

 날씨 현황(강원도 동해시) : 비. 온도(20∼23) 

◆ 참석 인원 : 김현호, 김호중, 박성원, 이정수, 이정일, 임순재, 채호기, 허진, 심규식, 오관기 (계 10명)

◆ 안내자 : 임순재

◆ 상세시간

07:00 합정역(2・6호선) 2번 출입구

07:15 반포대교 남단 U턴 지점

07:30 천호대교(5・8호선) 1번 출입구 `

09:45 평창愛휴게소 

11:20 두타산 주차장

11:30 두타산 매표소

11:35 신선교

11:37 베틀바위 산성길 입구

11:46 숯가마터

11:48 매표소 0.4km, 베틀바위 1.2km 

11:55 매표소 0.6km, 베틀바위 1.0km 

12:05 삼공암

12:18 매표소 1.1km 

12:21 베틀바위 0.5km 

12:30 ~ 13:00 베틀바위 전망대. 중식

13:00 미륵바위 0.2km

13:08 미륵바위. 마천루 2.4km

13:13 베틀바위 전망대 0.3km, 마천루 2.4km

13:31 베틀바위 전망대 1.1km, 마천루 1.8km

13:44 숯가마터

13:46 베틀바위 전망대 1.7km, 수도골 0.8km, 두타산성 0.5km

13:55 베틀바위 전망대 1.9km, 마천루 1.2km

13:56 산성 12폭포 

14:11 수도골 0.3km

14:17 석간수

14:22 베틀바위 전망대 2.7km, 마천루 0.5km

14:35 ~ 14:50 마천루 전망대.

14:55 금강바윗길

15:15 쌍폭포

15:20 용추폭포. 발바닥바위

15:28 병풍바위, 장군바위

15:52 두타산, 베틀바위 전망대 갈림길

16:00 학소대

16:15 삼화사

16:22 반석교(TVN 수목드라마 마더 촬영지)

16:23 삼화사 일주문

16:24 금란정, 무릉반석 

16:30 두타산 매표소

16:50 ~ 18:40 굴뚝촌 

20:20 천호역 

20:40 반포대교

20:55 합정역

1. 두타산(頭陀山) 소개

두타(頭陀)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을 이르는 불교용어다. 산스크리트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버린다・떨어버린다・씻는다・닦는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출가수행자가 세속의 모든 욕심이나 속성을 떨쳐버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으며, 참기 어려운 고행을 능히 참고 행하는 것을 두타 또는 고행자(苦行者)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두타행 또는 두타행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두타산은 우리나라 산 중에서 금강산 다음가는 아름다운 산이라고 하였다. 삼척부사로 재직했던 김효원(1542 ~ 1590)이 『두타산 일기』에서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다운 산을 두타산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동의 금강산’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두타산(1,353m)은 예로부터 삼척 지방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 숭상되었으며, 태백산맥의 주봉을 이루고 청옥산(靑玉山, 1,404m), 쉰움산(688m)과 이어져 있다. 

청옥산이 두타산보다 51m 더 높지만 이 지방 사람들은 이 산 전체를 청옥산이라 부리지 않고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두타산으로 불리고 있다. 삼화사의 일주문에서도 ‘두타산 삼화사’로 표기하고 있다. 윤두서의 『동국여지지도』에는 청옥산 이름이 보이지 않으며, 신경준의 『산경표』에 청옥산이 나타나는데, 두타산보다 아랫자락에 청옥산이 놓여 있는 것이다. 두타산은 정상부가 첨봉을 이루고 주변은 급경사여서 날렵한 산세를 자랑하는 데 반해 청옥산은 완만하고 묵직한 형상을 보인다. 

두타산은 대체로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으며, 삼림이 우거져 있어 사찰·유적지·명승지가 산재하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는 파직당한 후, 이 산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지었다.

이번에 산행할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및 ‘두타산 협곡 마천루’은 사진으로 설명을 대체한다.

2. 두타산(頭陀山) 베틀바위 산성길・협곡 마천루 산행의 의미

7월의 첫 번째 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름이다. 여름은 물과 계곡을 찾게 되고 또 산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러한 곳을 찾던 중, 마침 동해시가 한 달도 채 안 된 2021년 6월 10일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및 ‘두타산 협곡 마천루’를 총사업비 10억 3천만 원을 투입해 총연장 5.34㎞의 순환 코스를 등산로 정비뿐만 아니라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안전쉼터, 오르내리기 편리한 데크 계단, 특색 있는 안내판, 휴휴 쉼터, 회양목과 서어나무 군락지 보호 등의 기존 등산로와 차별화된 시설을 확충해 이번에 사업을 최종 마무리하면서 준공식을 거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타산 협곡 마천루’는 이번 6월에 처음으로 개방되는 곳이고,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은 작년 2020년 5월 43년만에 개방한 곳이다. 개방되었다고 알려진 이후, 작년 2020년 8월부터 올 2021년 6월까지 7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매우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본 산악회에서도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및 ‘두타산 협곡 마천루’를 여름의 서막을 알리는 7월의 첫 번째 주에 다녀옴으로써 최초의 산행이 된 것으로 의미를 찾고자 한다.

3. 두타산(頭陀山) 베틀바위 산성길・협곡 마천루 산행기

동해시가 2021년 6월 10일 ‘두타산 협곡 마천루’ 등산로를 조성하면서 준공식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미리 작성해 놓은 “7월 정기토요산행” 계획표에서 첫 번째 주 산행을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및 ‘두타산 협곡 마천루’ 코스로 변경하였다. 산행시간은 4시간으로 책정하고 관람시간을 4시간으로 예상하며 모두 8시간을 소요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8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계획한 것은 처음으로 개방하는 곳일 뿐 아니라 두타산의 폭포와 무릉계곡이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라 충분히 힐링하고 또 두타산의 영험한 기를 듬뿍 받아 들리려고 한 것이었다.

이번 산행의 전 날인 7월 2일을 전후해서 제주도 지역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기상청의 예보였다. 보통 매년 6월 25일부터 시작되던 장마가 올해는 7월 2일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39년만의 늦장마라고 한다. 우리는 장마 다음 날에 산행하게 되어 은근히 비의 양에 대해 걱정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은 산행 당일인 7월 3일 새벽까지 비가 전혀 오지 않았고, 출발하는 오전 7시에도 비가 오지 않았다. 네이버에서 기상청의 예보를 보니 오후 3시부터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두타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비가 오더라도 많이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정각 오전 7시, 합정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4시간 20분에 걸쳐 오전 11시 20분 두타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대형 버스 및 중형 버스, 각종 SUV 차량과 승용차 등이 제3 주차장까지 꽉 들어차 있다. 요즘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두타산은 폭포와 계곡으로 여름에 인기가 많은 곳인데, 이번에 새로이 개방된 등산로가 있어 더 많은 탐방객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매표소에서부터 탐방객이 많음을 실감나게 한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입장하는 탐방객, 3-4명 단위로 입장하는 탐방객, 부부 또는 연인끼리 입장하는 탐방객 등 매우 다양한 탐방객들이 줄을 기다리며 입장권을 구매하고 있다.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이고 65세 미만은 2,000원을 받고 있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입장할 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일일이 체크하고 들어가야 했다. 

매표소에서 50m를 들어가면 신선교가 나오고, 건너면 바로 베틀바위 산성길 안내도가 나온다. 이곳에서 인증하듯 먼저 사진부터 찍어 놓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슬비가 내렸는데, 흩날리는 비라서 우산을 쓰거나 우의를 입을 필요가 없었다.

매표소에서 400m를 걸으면 첫 이정표를 만난다. 매표소에서 베틀바위까지 1.6km임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하는 이정표였다. 


매표소에서 600m를 걸으면 두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매표소를 볼 수 있는 전망이 나온다. 첫 번째로 매표소를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매표소에서 600m를 걸으면 두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매표소를 볼 수 있는 전망이 나온다. 첫 번째로 매표소를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매표소에서 1.1km 지점에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두타산은 산행길이 좁아 한 줄로 오를 수밖에 없는 구간이 많고, 또 급경사의 바윗길로 위험 구간이 많아 올라가고 내려오는 코스를 구분해 놓은 듯 하였다.

두타산 베틀바위 전망대로 향하는 산행은 흥미를 유발하는 구간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걸으면 땀이 흐르지만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상쾌한 코스였다.

베틀바위 전망대에 올랐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이다. 전에 중국의 장가계에 다녀왔던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베틀바위가 비구름에 쌓여있어 더욱 신비스럽게 보여진다. 맑은 날에 찍은 베틀바위와 비교해 보시길......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매표소에서 이곳 베틀바위 전망대까지 오르면서 전망이 좋아 배가 고픈 줄 모르게 올라왔다. 사진 찍기도 바쁠 정도로 아름다운 전경이라 배가 고픈 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으며 베틀바위를 바라보며 즐기고 또 즐기고 있었다. 베틀바위 전망대에는 많은 인파로 인하여 순서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마음이 즐거우면 시간도 빨리 지나가는지? 겨우 3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30분이라니...... 감탄하던 베틀바위의 아름다움을 다음에 또 만나기로 기약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200m를 오르면 미륵바위가 나온다는 이정표를 뒤로 하고 위로 올라간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약 200m를 걸어 올라오니 미륵바위가 나온다. 이곳에도 많은 탐방객이 미륵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할 수없이 미륵바위만 찍고 다음 행선지로 향해야 했다.베틀바위 전망대에서 약 200m를 걸어 올라오니 미륵바위가 나온다. 이곳에도 많은 탐방객이 미륵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할 수없이 미륵바위만 찍고 다음 행선지로 향해야 했다.


 

미륵바위에서 산성 12폭포로 향하는 구간은 거의 평지와 다름없었다.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하는 날씨라 오히려 산행에 적절한 체온으로 여겨진다. 김호중 회원의 미소와 발걸음으로 이번 산행이 크게 힘들지 않음을 증명하는 듯 하였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1.1km를 걸으면 두타산 협곡 마천루까지 1.8km인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로 베틀바위 전망대의 이정표는 작년에 세워졌고, 두타산 협곡 마천루 이정표는 이번에 세워 놓은 듯 색상이 다르게 비춰졌다.

이곳에서도 숯가마터가 나왔다. 매표소에서 베틀바위로 향하던 곳에 숯가마터가 있더니 이곳에도 숯가마터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숯가마터가 나왔다. 매표소에서 베틀바위로 향하던 곳에 숯가마터가 있더니 이곳에도 숯가마터가 있었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1.7km를 지나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 많은 인파가 모여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탐방객이 협곡 마천루로 향해야 하는데, 협곡 마천루 이정표가 설치해 놓지 않아서였다. 지도를 검색해서야 수도골을 지나가야 협곡 마천루로 가는 것이어서 우리는 수도골로 향했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1.9km 지점에 산성 12폭포가 나온다. 비가 오기에 폭포의 수량이 풍부해 보여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협곡 마천루를 관람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약 15분의 휴식은 충만한 힐링이었고, 영험한 기의 흡수였다. 협곡 마천루에서 매표소 방향으로 약 800m를 내려오면 쌍폭포와 용추폭포에 이른다. 

쌍폭포에 도착해서야 동해시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쌍폭포는 20m에 이르는 높이에서 흐르는 두 개의 물줄기의 발원지가 서로 다른 것이 특색인데 왼쪽 폭포는 두타산 정상과 박달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층층이 쌓여진 계단을 타고 선녀의 모시처럼 투명하게 흐르고, 오른쪽의 폭포는 청옥산과 고적대에서 발원한 물이 용추폭포를 거쳐 떨어진다. 즉 두타산과 청옥산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쌍폭포이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린 후 본다면 쌍폭포가 내 뿜는 거친 매력 앞에 모두 넋을 놓을 것이다.

무릉반석, 용추폭포와 더불어 무릉계곡의 3대 명소로 꼽히며, 지난 2011년 KBS방송사의 예능프로(1박2일)에서 전국 6대 폭포라는 컨셉으로 이승기씨가 소개하여 유명세를 탔으며, 2015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8대 폭포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동해시 무릉계곡 명승지,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무릉계곡과 두타산, 청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곳으로 계곡의 경관이 단연 빼어나다. 

용추폭포는 쌍폭포에서 약 2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용추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면에 발바닥 바위를 바라볼 수 있다.

병풍바위와 장군바위를 지나지만 우거진 나무로 전면을 모두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무를 자를 수도 없고...... 아쉽지만 자연 그대로가 더 좋다.......

용추폭포를 지나고 삼화사를 지나지 않는 곳에 두타산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학소대에 도착한다. 안내도에 의하면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쓰여 있다.

삼화사三和寺는 동해시 삼화동 두타산 자락, 무릉계곡의 초입에 위치한 전통사찰로 14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고찰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삼화사의 창건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신라의 불교가 흥성하던 선덕여왕 11년(642)때의 이야기이다. 신라사람 자장율사가 오랜 유학 후에 당唐나라에서 귀국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이름 하였다는 설이 그 하나이고, 두 번째는 멀리 서역에서 건너온 세 명의 선인禪人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삼척의 한 포구에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나타났는데 배 안에서 잘생기고 늠름한 약사불 셋이 손에 연꽃 한 송이씩을 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배에서 내리더니 곧장 두타산으로 향했다. 한참을 가다가 맏형인 약사불은 북쪽의 삼화촌에, 둘째는 동쪽의 지상촌에, 셋째는 남쪽의 궁방촌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각각 흑련대, 청련대, 백련대를 만들었고, 훗날 흑련대는 삼화사로, 청련대는 지상사, 백련대는 영은사로 변했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는 신라 경문왕 4년(864)의 일이다. 범일국사梵日國師가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두타산에 이르러, 세 선인을 기리는 ‘삼공암’이라하는 암자를 지었는데, 이 암자가 바로 삼화사의 시초였다고 보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설화를 뒤로하고 고려 태조 때, 비로소 삼화사로 이름이 정해졌는데, 이후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1977년에 이르러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변화되자 사찰은 옮겨가게 되었고, 무릉계곡의 초입에 사지로 남아있던 중대사中臺寺의 옛터를 삼화사의 터로 사찰을 중창해 옮겨가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삼화사 경내에는 적광전을 비롯하여 약사전, 극락전, 삼성각, 비로전, 범종각 등의 전각건물과 육화료, 심검당, 공수실, 무문전, 두타선원, 적묵당 등의 당우가 들어있다. 

특히 주요 문화재로 삼화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 삼층석탑(보물 1277호), 철조노사나좌불(보물 제1292호)과 국행수륙대재 의례서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덕주사본(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6호)과 갑사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0호) 등 여러 점의 전적류를 소장하고 있어 명실공이 주요한 사찰로 이름 높은 곳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고요한 배경 안에 아늑하게 들어있는 산사! 삼화사는 사철 푸른 금강송 수림에 둘러싸여 넉넉한 아름다움과 깊은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동해시의 대표사찰이다.

삼화사가 유명한 곳은 삼화사에서 매년 거행하는 국행수륙대재이다. 국행수륙대재는 동해시의 삼화사와 서울시의 진관사에서만 봉행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2월 31일 삼화사의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로, 서울 진관사의 국행수륙대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삼화사의 수륙대재에 대한 설명은 동해시에서 발간한 『동해시 문화유산 가이드북』을 인용한다.

동해시 두타산에 위치한 삼화사에서는 땅과 물에 존재하는,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수많은 넋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수륙재라는 이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우리역사에서 수륙재의 시초는 고려 때부터이다. 그러나 이후 수륙재는 새 나라를 개창하면서 스러져간 영혼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조선 태조가 명하고 왕실이 주관하여 치르던 공익적 성격이 뚜렷한 대규모 불교의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수륙재에 관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잘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국가적 의례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명맥을 오래 이어가지 못하였다. 불교를 억제하였던 조선의 정치적 구조 때문에, 또 일제강점기의 환란 속에서 점차 사라져갔던 것이다. 그러던 것을 2005년, 삼화사가 본래의 설행방식을 찾아 계승하였고 이를 복원하고 전승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수륙재는 하늘과 땅, 어둠과 빛, 물과 육지에 존재하는 모든 외로운 영혼들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한 제의이다. 수륙재의 본래 명칭은 ‘천지명양수륙무차평등대재天地冥陽水陸無遮平等大齋’이고, 줄여서 ‘수륙회水陸會’, ‘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 부른다. 

본래 수륙재는 중국 양나라의 무제가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으로 ‘수륙잡문水陸雜文’을 만들고 505년 ‘금산사金山寺’에서 재齋를 베푼 것이 그 시초이다. 우리역사에서의 수륙재를 간추려보면, 고려 광종 21년(970), 갈양사葛陽寺에서 수륙재를 지낸 것이 최초의 예이고 이후, 조선 초기에는 왕실주도하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더욱 성대히 치러지게 되나, 조선은 유학을 신봉하여 불교를 억압하였던 나라이기에, 상당부분 유교의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라도 중종 10년(1515)까지는 면면히 이어져갔다. 

하지만 이후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국가가 행하던 수륙재는 더 이상 설행되지 못하고, 민간, 사찰 등을 통해서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삼화사 수륙재는 태조 4년(1395), 조선 건국과정에서 희생된 고려 공양왕 부부와 고려 왕실의 왕족들을 위해서 관음굴, 견암사, 삼화사에서 봄 · 가을 두 차례로, 매년 수륙재를 지내며 정기적 의례로 치러져왔고 일제강점기에 잠시 금지되지만 속행하였다. 이처럼 삼화사 수륙재는 조선 태조 때부터 정기적으로 치러진 의례였다는 점, 주문을 욀 때는 수인手印을 만드는 등 밀교적 특성이 보이는 점, 방생 같은 특화된 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차별성을 보여주며, 2013년 12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초기의 전통을 계승한 동시에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천도의 수륙재를 실행하는 사찰로써 삼화사만의 특별함이 있고 의식과 범패, 장엄 등을 아울러 전승하고 있어, 역사적 의의는 물론 문화 예술적 의의 또한 크다고 하겠다.

삼화사를 관람하고 종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선생에게 삼화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서 삼화사가 지닌 가치와 특징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사찰과의 다르게 특별히 수행하는 수륙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삼화사에서 매표소를 방향으로 내려오니 바로 반석교가 나온다. 이 반석교는 TVN에서 2018년 1월 24일부터 2018년 3월 15일까지 방영한 수목 드라마 “마더” 촬영지라는 POP를 보게 된다. 

반석교를 지나면 무릉반석이 나오고 금란정이 나온다.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는 무릉반석은 동해시 사이트에서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무릉반석’은 동해시의 8개의 비경 중 제3경을 차지할 정도로 멋지고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무릉반석’ 바로 앞에는 암각서라 하여, 갖가지 기념각자의 석각이 이채롭게 새겨져 있다. 곳곳에 옛 선비들의 풍류공간이자 종교적 수행처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반석에도 이곳을 찾은 많은 명필가와 묵객 등이 음각을 새겨 놓아 이색적인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더운 여름날 계곡물과 함께 이 반석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으며, 천혜의 자연과 더불어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금란정 또한 동해시 사이트에서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금란정은 2개의 기단을 쌓고 그 위로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 지붕양식의 정자 건축물이다. 수직 난간 대를 세우고 두겁대를 간략하게 둘렀으며, 기둥 위에는 창방을 걸고 소로 받침을 둔 후, 도리를 얹고 사방에 벽이 없는 전형적인 통개형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졌다.

1903년 대한제국 광무7년에 당대 삼척지방 유림재생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현학을 수양하고 동양 예의를 갖추며 봄과 가을의 풍류를 즐겨왔다. 그러나 한일합병의 국치를 당하여 향교가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난계를 결성하고 정신적 지주로서 기념하려고 정자를 건립하기로 약속했다. 그 뒤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1947년 북평읍 단봉리 봉정 뒷산 석경재에 건립하였으나, 정자의 위치가 적당하지 못하다고 여겨 12년 뒤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현재까지 금란계원의 후손들이 해마다 봄과 가을에 모여 제사도 지내고, 정자에서 시회를 열어오고 있다. 정자 뒤편의 바위에는 정광묵이 1977년 예서체로 쓴 금란계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금란정 앞에는 북평출신 시인 최인희 선생의 ‘낙조’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인근 무릉반석에는 옛 풍류객들의 이름과 시가 새겨져 있는데, 이 중에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의 글도 있지만 마모가 심해 이를 본뜬 서각을 금란정 옆에 만들어 놓기도 했다.

금란정은 1984년 강원도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경포호가 바라보이는 경포대 북쪽 시루봉 기슭에 건립한 집으로, 앞뜰에 매화를 심어 학이 서식하였다하여 매학정이라 하였다. 그 후 1889년 금란계원들의 계가 재구성되고 이곳으로 옮겨 지으면서 금란정이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금란정은 많은 관광객이 찾으며 등산이나 트래킹을 즐기는 코스 초입부에 위치해 좋은 휴식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보통 관리사무소를 지나 금란정을 시작으로 무릉반석, 삼화사, 학소대, 선녀탕, 쌍폭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추폭포의 절경을 감상하고 다시 돌아 내려오는 코스를 걷는다. 트래킹의 여운을 갖고 되돌아온 길 마지막에서 무릉반석을 바라보며 금란정에 만끽하는 휴식이란 환상적인 최고의 시간이 될 것이다.

두타산은 무릉계곡으로도 유명하다. 반석교 위에서 찍은 무릉계곡이다. 그리고 신선교 위에서 찍은 무릉계곡이다.

태백의 산자락이 내려와 동으로는 두타산, 서로는 청옥산을 내려놓고 동해의 바다를 바라보며 흩뿌려놓은 선계仙界, 동해 무릉계곡은 이러한 두 산을 배경으로 해, 삼화사三和寺에 이르기까지 약 4km가량 펼쳐진 계곡이다. ‘동해안 제일의 산수’라 일컬을 만큼 자연경관의 백미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武陵仙源中臺泉石頭陀洞天(무릉선원중대천석두타동천)

이곳은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라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을 잊으니 수행의 길 열리네

옛 선비들이 얼마나 무릉도원다웠으면 저런 암각서를 새겼을까? ‘무릉’은 시인 도연명이 그려낸 최고의 이상향, 시인묵객들이 저마다 찾고자한 신비의 낙원이었다. 무릉계곡은 그러했던 시인묵객들이 무릎을 탁 쳤을법한 무릉도원의 경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등 뒤, 배경으로 업고 10리나 펼쳐진 기암괴석과 푸른 못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1,500평 규모의 암반인 무릉반석에 서면 훤히 트인 주변의 경치에 그야말로 넋을 놓게 된다. 그 앞에서 쉼 없이 터져 나오는 감탄은 억지로 멈출 수도 없다. 

계곡 입구에는 차례로, 호랑이가 건너뛰려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호암소’가 있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무릉반석’, 계곡이 깊어지며 좌우로 펼쳐진 웅대한 장관의 화강암 절벽,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선명하게 맑은 선녀탕, 마치 장군의 형상인양 굳세게 서있는 장군바위, 두개의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내리는 쌍폭, 용이 승천하며 커다란 자국을 남겼다는 전설의 용추폭포까지, 다양한 하천지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절경을 이룬다. 또 겹겹의 화강암층으로 떨어져 내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관음폭포와 널찍한 암반 위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학소대, 벌을 받던 선녀가 삼베를 다 짜고 나서야 승천할 수 있었다는 건너편 베틀바위, 신선이 넋을 놓고 앉아 무릉계곡의 장관을 보았다는 신선바위 등, 태고의 신비와 전설이 어우러진 절경은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라 할 명승지이다. 

특히,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두 팔 같은 주상절리와 넓은 땅을 차지하려 길게 드러누운 듯 보이는 판상절리가 경쟁하듯, 뚜렷한 기암절벽을 이루며 늘어선 가운데, 두 종류의 절리가 교차하며 경관을 만들어내는 쌍폭의 비경은 가히 신의 조화처럼 신비하다. 

또 동서 방향의 절리로 형성된 절벽을 따라 커다란 함지박 같은 물웅덩이의 소沼가 형성된 용추폭포의 주변은 기암절벽 사이에서도 단연 걸출한 장관을 빚어내고 있다. 오랜 세월, 무릉계곡의 곳곳은 선비들의 풍류공간이자 종교적 수행 처였다. 이곳에 거하며 고려의 문신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 때의 삼척부사 김효원은 신선이 노닐던 곳이니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또한 무릉반석에는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의 고아한 시들이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무릉계곡은 역사와 문화, 학술적 가치는 물론 자연유산으로서의 뛰어난 가치가 인정되어, 2008년 명승 제 37호로 지정되었다.

오후 정각 4시 30분, 두타산 산행의 시점인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매표소에 도착할 때까지 흩날리던 비여서 비를 맞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매표소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비의 강도가 세지기 시작하였다. 우산을 받쳐들지 않으면 안 되는 비였다. 다행하게도 우리의 산행이 끝나자 바로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고 약 1.5km 정도에 우리의 만찬 장소인 굴뚝촌에 도착하였다. 이 굴뚝촌은 기사님께서 추천해 주신 곳이었다. 

굴뚝촌은 동화 속에 나올 정도로 어린이가 좋아할 아름다운 집이었다. 식도락과 놀이터를 겸비한 장소로도 충분한 외형은 숲으로 쌓여있어 예술적 감각을 가미하였다. 게다가 출입구는 계절에 맞춰 꽃을 가꾸어 놓아 1년 내내 식상하지 않은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경해 놓았다. 강원도 및 동해시 그리고 각종 단체에서 수상한 표창장을 전시해 놓아 청결과 맛을 직・간접적으로 보장하고 있었다. 여사장은 본인이 직접 요리한다고 설명하여 친밀감과 신뢰도를 향상시킨다. 

이번 주 산행의 안내자인 임순재 회장의 건배사로 우리의 만찬은 시작되고, 김현호 회원의 건배사로 우리의 낙과 흥은 더욱 고조되었다.



1시간 30분의 식도락은 허약해진 기와 허기진 배를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두타산의 베틀바위와 마천루에서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면 굴뚝촌은 입을 즐겁게 해준 것이다.

이번 주 산행에 안내를 자처해 주신 임순재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또 함께 참석해준 회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같이 산행하여 즐거웠으며 행복하였습니다.

다음에도 또 함께 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두타산(頭陀山) 베틀바위 산성길・협곡 마천루 후기

두타산 주차장에서 오후 6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천호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0시 20분이었다. 서울 천호역에서 두타산 주차장까지 3시간 50분이 걸렸는데, 반대로 천호역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 40분이었다. 10분 정도 단축된 것이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합정역에는 오후 10시 50분에 도착하여 4시간 10분이 걸렸다. 서울 합정역에서 갈 때보다 올 때가 10분 정도 덜 소요된 것이다. 

늦장마철이라 우천산행이 될 것이라 걱정하였는데, 의외로 우리가 산행한 시간대에는 비가 흩날리거나 내리지 않았다. 하늘의 도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두타산은 우리가 도착한 시점부터 마치 비구름으로 만든 흰 옷을 입고 기다린 듯 하였다. 비경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보여주지도 않는 것이라면서 고고한 자태로 서있었다. 우리를 반기는 듯한 옅은 미소였지만 엄숙한 표정이기도 하였다. 조금만 보고도 느껴야 하고, 잠시 머물러서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또 방문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기 원하며 색다른 체험하기를 바라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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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3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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