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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회] 운길산 산행기
2021.07.01 Views 49 박성원
[1957회] 운길산 산행기
◆ 산행 코스 : 운길산역(경의중앙선) – 운길산 들머리 - 운길산 - 수종사 - 운길산 날머리 – 운길산역(경의중앙선)
◆ 산행 일시 : 2021년 6월 26일 오전 10시 ∼ 오후 4시 (6시간 산행)
◆ 날씨 현황(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 비와 구름. 온도(20∼27)
◆ 참석 인원 : 박성원, 부길만, 임순재 (계 3명)
◆ 안내자 : 부길만
◆ 상세시간
10:00 운길산역(경의중앙선) 2번 출입구 만남
10:20 운길산 정상으로 출발
10:37 운길산 들머리
11:00 ~ 11:15 1차 휴식
11:26 운길산역 2.20km, 운길산 정상 0.90km
11:29 1차 돌탑
11:31 2차 돌탑
11:47 운길산역 2.70km, 운길산 정상 0.31km
12:00 ~ 12:30 운길산 정상(610m)
12:42 운길산역 2.70km, 운길산 정상 0.31km
12:58 운길산역 2.80km, 운길산 정상 0.80km
13:00 운길산(雲吉山) 수종사(水鐘寺)
13:20 ~ 13:30 중식
13:30 ~ 14:50 삼천헌(三泉軒) 음다(飮茶)
16:00 운길산역(경의중앙선) 2번 출입구
16:05 ~ 17:00 문산행 열차 승차 – 왕십리역 하차
17:00 ~ 17:50 홍수계찜닭
18:00 왕십리역(2호선) 시청 방향 순환선 탑승, 종료
1. 운길산(雲吉山) 소개



남양주시 문화원에서는 운길산(雲吉山)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높이 610m의 아늑한 산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 북서쪽 지점에 솟아 있다고 표현하면서 산수가 수려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 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주변에 다산유적지・팔당호・남양주종합촬영소・금남유원지 등의 관광지가 있고 산중턱에 수종사(水鐘寺)가 있어 볼거리도 많은 편이라고 하였다.
2. 운길산(雲吉山) 산행기
이번 주 산행은 운길산이다. 지난 주에는 ‘한강나루길’ 2회차를 위해 만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인 운길산역에서 오전 10시에 만났다. 2020년 산행에서부터 2주 연속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났던 적은 없었다. 우연한 일이지만 한 장소에서 ‘한강나루길’로, ‘운길산’으로 다르게 산행하였으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보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남기고 싶다.
첫 번째 운길산역에서의 만남은 7명이 참석하였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재미가 반감하였는지 아니면 운길산 산행이 부담이 되었는지 참석자가 3명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산행은 어느 산이든, 어느 시간대에 오르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상황은 동일하지 않기에 항상 새롭고 즐거움을 유발한다. 비록 3명이지만 임순재 회장, 부길만 부회장, 박성원 총무 등 집행부 전원의 참석하게 된 ‘집행부 산행’이 되었다.
네이버 카페에 등록하지 않고 참석하신 회원이 종종 있어 오전 10시까지 기다리고 또 혹시나 조금 늦게 참석하는 회원이 있을까 희망(?)을 갖고 운길산역 대합실의 커피숖에서 따스한 커피로 흩날리는 비를 피하며 오늘 일정의 산행을 조율하였다.
부길만 부회장께서는 오후에 집안 행사로 사당역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최초의 계획인 수종사 – 운길산 – 적갑산 – 예봉산 – 예빈산 산행은 불가하고, 운길산 정상과 수종사만 산행하는 것으로 3명이 합의하여 결정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출발한 시간이 오전 10시 20분, 잠시 마트에 들러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바로 운길산 정상으로 향했다.
운길산 들머리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7분이었다. 이곳은 오후에 내려온 날머리이기도 하였다.
운길산 들머리에서는 능선길이 아닌 계곡길로 올랐다. 쉬지 않고 오르다보니 마스크 쓴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숨은 더욱 가쁘게 다가온다. 계곡길에서 능선길로 접어든 후,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약 15분의 휴식은 가빠진 숨을 가다듬고, 시원한 바람으로 붉게 달아 오는 얼굴을 식힌다.
휴식을 취한 후, 약 10분을 오르니 운길산 정상까지 0.9km인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가 설치된 곳에는 탐방객을 위해 벤치도 설치해 놓았다.
정오, 정각 12시 운길산 정상에 올랐다. 데크가 설치된 정상에서의 첫 환영은 고양이였다. 고양이의 배가 볼록한 것이 영양 섭취가 충분한 것으로 매우 건강해 보였다. 운길산 정상에 막 올랐을 때는 비구름으로 인해 사방의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에서 30분을 쉬는 동안에 비구름이 조금 걷히긴 하였다. 내려올 때 쯤, 겨우 두물머리 방향을 사진으로 담을 수가 있었다.
오후 1시 정각, 운길산(雲吉山) 수종사(水鐘寺)에 도착하였다. 운길산 정상에서 약 30분이 걸린 것이다. 운길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수종사 일주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해탈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탈문 글자가 좌로부터 우측으로 쓰였다. 현대에 다시 쓴 글자로 보인다.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수종사 경내가 나온다. 우측으로는 삼정헌이 있고, 경내를 지나면 대웅보전이 나온다. 우리는 수종사를 구경하기 전에 먼저 인증사진 찍듯 사진부터 찍는다. 수종사 일주문은 나오면서 찍었다.
수종사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 :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온다.
운길산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자연경관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으며,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다.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 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며, 현재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이트에서는 수종사를 세조 때 창건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유수종사기(游水鍾寺記)에서는 신라 때 창건한 것으로 설명해 놓았다.
원문과 번역문을 수록하면,
游水鍾寺記 水鍾者。新羅古寺。寺有泉。從石竇出。落地作鍾聲。故曰水鍾云。
유수종사기(游水鍾寺記) 수종사(水鐘寺)는 신라(新羅) 때 지은 고사(古寺)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흘러 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를 내므로 수종사라 한다고 전한다.
수종사에서 우리는 수령이 500년이 된 은행나무 앞에서 두물머리를 전경으로 점심을 하였다. 점심하는 약 10분 동안에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여 우리는 삼정헌으로 들어갔다. 마침 관리하시는 선생께서 따스한 물을 갖다 주시어 다과상에 놓여있는 ‘차 마시는 방법’을 읽으며 다과로 심신의 피로를 풀게 되었다.
수종사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동안 나의 뒷면에는 커다란 액자가 놓여 있었는데, “다선일미(茶禪一味)”라 쓰여 있다. 관리하시는 선생께 부탁하여 겨우 사진을 찍으니, 또 다른 문구를 보여주면서 이것 또한 좋은 문구이니 차 마시면서 읽어 보란다. 다선일미에 대해 알아보니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다(茶)문화와 선(禪)문화는 모두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다성(茶聖)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저술하여 차에 대한 규범을 마련하고, 같은 시기의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가 끽다거(喫茶去)라는 공안으로 학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선과 차는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다도는 다예(茶藝)・다덕(茶德)・다례(茶禮)・다리(茶理)・다정(茶情)・다학설(茶學說)・다도(茶道) 등을 선도하고, 또 차사(茶事)를 통한 개체의 미적 향유 과정에서 품격을 함양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조화와 평안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차는 전래 시기를 신라 흥덕왕 3년(828) 대렴이 당으로부터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 자락에 심은 것을 차의 시작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의 다선일미의 전래는 차가 처음으로 들어오던 시기의 신라와 당나라는 문물교류가 잦았고, 신라의 유학파들이 당나라로 들어가 마조문하에서 수학한 뒤, 차와 선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차와 선이 토착화되었다고 믿고 있다.
조선시대에 초의선사(草衣禪師, 의순, 1786-1866)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분이어서 `다성(茶聖)`이라고 부른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소치 허련(1809∼1892), 그리고 평생의 친구되는 추사 김정희(1786∼1856)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던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으며 우리 토산차를 예찬하였다.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는 것이다.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삼정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차를 음미하며 한담을 나누었다. 심신의 피로감 해소는 물론 안정감까지 정착시켰다. 운길산역으로 내려갈 때 수종사에서 한 번 더 전망을 감상하고 머릿속에 영원히 새겨놓고 싶었다.
수종사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운길산역에 도착하였다. 운길산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부길만 부회장의 약속시간에서는 약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오후 4시라 요기도 느끼지 못한다. 삼자의 협의 끝에 왕십리역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오후 5시 정각에 왕십리역에 도착하여 맛집인 ‘홍수계찜닭’으로 들어갔다.
약 1시간 동안 식도락을 즐기며, 각자 해산함으로써 이번 산행은 무사히 잘 마쳤다.
이번 주 석식은 부길만 부회장께서 후원해 주셨다.
부길만 부회장님!
운길산과 수종사를 안내해 주시고,
석식까지 후원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