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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토요산행기
(1323회 산행기) 계룡산 종주 산행후기
2009.05.02 Views 42 이석범
부제목 : 참았던 은행 두 알, 닭똥집으로 폭발하다.
토요 산행기 제목부터가 요상하다.
은행 두 알은 뭐고, 닭똥집은 또 뭔 말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40년 도를 닦고 멍석 깔고 남의 사주팔자나 논하는 자칭 타칭 유명도사님들의 입산수도의 필수코스로 빼먹을 수 없는 영산(靈山), 계룡산을 다녀오지 못하신 분들이다. 더구나 불기 2553년 부처님 오신 날에 떠난 산행 덕에 부처님 안전에서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천하일품 비빔밥 공양특혜까지도 놓쳐버린 운수 사나운 분들이다.
유통회사(도서유통 신영북스-도서보관, 창고관리, 배본대행:이참에 광고 좀 하고^^*)를 만든답시고 작년부터 중단되었던 나의 심마니 행렬 불참이 5개월을 넘겼으니 그 좋은 산삼효과는 바닥을 치고 마이너스로 접어들어 현 정권 들어 멈춰버린 경제성장률처럼 사냥개에 쫓겨 꽁지를 드러내고 풀숲에 머리를 처박는 꿩 신세다.
은행 두 알, 닭똥집은 비아그라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민족고유의 자양강장제, 이 사건의 전말은 뒤로하고 이제부터 토요산행기로 들어가 보자.
늘 그랬던 것처럼 간만의 산행계획은 넘치는 엔드로핀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했던 나에게는 2009년 5월 2일 토요일 부처님 오신 날 아침 8시는 무척이나 늦은 시간이다.
합정역에서 9명과 남부터미널에서 합류하신 이정일 고문님을 포함 10명을 태우고 갈 25인승 버스는 흡사 만리장성여행에서 본 듯한 차이나풍인테리어로 더더욱 나를 흥분시킨다.
전날의 5월1일 근로자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에서 5월 5일 어린이날로 이어진 황금연휴를 즐기고자 쏟아져 나온 차량들로 경부고속도로가 대형 주차장이 되었다.
아무리 밀려도 유유자적 버스전용차선을 달릴 줄 알았던 우리 생각은 예상을 뒤엎고 일반차선과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며 힘겹게 망향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이다.
빽빽히 들어찬 주차장의 차량사이를 헤집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최태경 회장님이 주신 감자구이와 기사님이 주신 냉커피가 정체로 밀린 내 가슴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그런데 김형재 사장님의 느닷없는 산행기집필자 지명으로 몇 개월 참석하지 못한 죗값으로 거절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천안휴게소 근방을 지나자 서서히 정체가 풀려 청주근교를 지나면서 시원스레 제 속도를 내며 달려 11시 48분 드디어 계룡산 입구에 접어들었지만 이미 만차가 되어 진입이 금지된 동학사 주차장 한쪽에 우리를 토해 놓는다.
상점에 들려 생수 두 통을 구입하여 한 통은 배낭 옆에 넣고 다른 한 통은 홍사장님께 드렸다.
11시 57분 “국립공원 계룡산 안내도” 앞에 모여 오늘의 산행코스를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하자, 언젠가 보았던 관악산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과 유사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텔들이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즐비하게 들어섰다. 혹시 나중에 1박2일 산행을 즐길 분들을 위해 그중에 제법 분위기 좋아 보이는 계룡그린빌(042-825-8211)을 소개한다.
차량번호 가림막은 기본이고 어둡고 깊숙한 주차장은 그곳을 찾는 분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줄 준비가 충분하다.










간만의 산행은 맨 뒤에서 산행기를 준비하느라 메모를 하며 따라잡기에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초반부터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가다 쉬다를 반복한 끝에 12시 53분이 되어서야 큰배재에 도달하였다. 배낭 속에 분배받은 김밥을 꺼내나 싶었는데 식사는 조금 더 올라가 상원암에서 하기로 하고 천승배 사장님이 주신 오이 한 토막으로 허기를 달랬다.
13시 10분 남매탑(상원암)에 도착하니 암자 주변에 많은 분들이 새 하얀 주발을 두개씩 앞에 두고 열심히 식사들을 하고 있다.
하긴 오늘이 어떤 날인가. 점심공양시간을 훨씬 넘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줄지어 배식을 기다리는 꽁지에 빌붙어 1회용 플라스틱 수저를 챙기고 밥통 앞에 서니 자원봉사를 하는 인심 좋은 분이 “성불하십시오.” 연신 인사를 하며 커다란 주발에 하나 가득 흰 쌀밥을 퍼 담아 주신다. 아무래도 양이 많을 것 같아 한 주걱 덜어내고 옆에 가지가지 준비된 산나물을 듬뿍듬뿍 올린 뒤 고추장 한 수저를 올리고 다른 그릇에 콩나물국을 담아 양손에 쥐고 이미 만석이 되어버린 마당 한켠의 식탁에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힘없이 이리저리 휘어지는 플라스틱 수저의 끝을 부여잡고 슥슥 비벼가며 한 입 가득 입에 넣자 “나무관세음보살”염불이 절로 나온다.
최태경회장님의 거금으로 준비해간 김밥은 배낭 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부처님의 자비를 만끽하였다.
배낭에서 방울토마토를 꺼내 나누어 먹고 나니 그때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심 공양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많은 분들이 연등을 신청하고 기왓장에 소원성취를 남기며 축제 분위기다. 암자 뒤로 병풍처럼 높게 둘러쳐진 이곳은 헐떡이며 오른 많은 중생들의 쉼터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명당이다.
해우소로 향하며 “상원암(上元庵)이라는 커다란 글씨와 무인동(戊寅冬) 여초거사(如初居士)”라는 작은 글씨가 높게 걸린 대형현판 앞에서 마음속으로 감사인사를 올렸다.
13시 48분 주변을 정리하고 남매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51분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간만의 산행과 허기짐으로 힘들었던 초반 산행이었는데, 이젠 부처님의 분에 넘친 자비로 배부르게 먹은 점심공양 탓에 다시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14시 삼불봉 고개를 지나 길게 이어진 계단을 밟고 삼불봉1봉에 올라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모두가 한자리에서 기념촬영.
“오대산에서 10년 태백산에서 10년 넘게 도를 닦고도 계룡산에서 10년 도를 닦지 않고는 도사반열은 고사하고 일개 점쟁이 축에도 끼지 못한다던 신비한 정기가 그대로 살아 느껴지는 영산임이 분위기로 느껴진다. 왜 지난정권이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지 못해 안달을 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렇게 시작한 수개월만의 토요산행은 14시 43분 관음봉과 삼불봉 중간 지점을 지나 15시 21분 계룡8경 중 제4경인 관음봉(816m)을 정점으로 멋지게 지어진 정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하산 길에 들어섰다.
“출입금지 벌금50만원”이란 푯말을 멀리 돌아 16시 5분 성황당돌무더기 앞에 이르자 제법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물부족국가로 가는 길목에 그냥 온몸으로 받아내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빗줄기지만 모두가 배낭을 내려 우의를 챙긴다.
16시 20분 연천봉고개에 이르자 여기서 고백할 수 없는 이유로 누가 쫓기라도 하지 않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그 그림자를 따돌릴 수 있었다. 산행일지의 서류상 은선폭포로 돌아 연천봉 고개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우리 모두의 합의비밀이다. 그래야만이 부처님 오신 날 500만원을 마음으로 시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시30분 계룡8경중 제3경인 연천봉에 올랐는데 열 분 중 남녀 두 분의 중도 하행으로 부처님도 돌아눕게 만드는 연적(戀敵)의 서막이 시작될 줄이야.
16시 44분 늘 함께 하던 단짝을 잃어버린 아픔도 모른 채 터덜터덜 하행길을 재촉했던 이 사람이 얼마나 야속했으랴. 이제야 생각하니 5개월여 만의 산행이 녹녹하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그런데 나를 포함 여덟 분의 하행자 중 나보다 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맨끝에서 그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드디어 17시 40분 약사전 다리입구에 이르렀다.
17시 45분 화려한 연등이 수놓은 계룡갑사(?龍甲寺)에 들어섰다.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표주박으로 물을 떠서 등산화의 오물을 씻어내고 17시 52분 지장보살전을 기웃거리자 문간의 접시에 담겨진 무지개떡과 절편, 팥고물 시루떡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미 허기질 시간이고 보니 “먹어도 되지요?”라는 질문에 “네 드세요”라는 시원한 대답이 귓전을 때리기도 전에 무재개떡이 먼저 포도청을 넘긴다. 하긴 대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염치좋게 손안가득 움켜잡고 주변분 들과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그때까지 꽁무니에서 메모하랴 따라잡으랴 미쳐 꺼내 먹을 수 없었던 배낭속의 강정까지 모두소진하고 17시 57분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 18시 4분 갑사 일주문에 합장하여 인사드리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18시 8분이다.
12시에 시작한 계룡산 등산 6시간 8분 만에 무사히 금년의 산행 신고식을 마쳤다.
석가탄신일 부처님의 자비로 등산이 끝나고 나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식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들어서니 3개의 테이블을 나란히 이어 3명, 4명, 3명으로 자리 배정이 되어 자리 잡고 최태경 회장님이 특별히 예약하신 엄나무 보양백숙에 더덕동동주와 소주가 곁들어지는 푸짐한 상이 들어온다.
멋진 산행의 마무리에 건배가 빠질 수 없는 한국인의 의무(?)에 충실하며 평소와 달리 쓰디 쓴 소주잔이 연거푸 내 목을 제낀다.
다시 서울에 올라가 다른 팀의 밤샘운전이 예약된 기사님의 편의를 위해 조금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칠 즈음이었을까, 맨 끝 쪽에 조용하던 테이블에 일대사단(?)이 벌여졌다. 평소 묵묵히 사진을 찍으시며 출판산악회 기록실로 통하시던 김형재 사장님의 호통이 식탁을 뒤흔들었다.
“내가 은행 두알 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내가 눈독을 들이던 닭똥집까지 챙겨주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가 없다.”고 하신다.
다른 사람들의 박장대소와 맞장구에도 영문을 깨닫지 못한 나는 한참 뒤에야 함께 그 웃음에 동참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호감을 갖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된다. 호감단계, 토닥토닥 시비단계 그리고 미안함으로 챙겨주기 단계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뜨이게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 자리에 모든 것을 공개(?)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평소에 두 분의 살뜰함이 김형재 사장님의 눈에 가시처럼 보였을 테고,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오순도순 음식을 퍼주며 좋은 것을 먼저 챙겨주는 모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 하지만 우연이던 계획적이었던 다른 8명의 동행에서 이탈하여 먼저 하행 길에 오른 두 분, 1시간 가까운 하산길을 함께하며 얼마나 애틋한 마음이었을까? 짐작가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H님과 J님의 마운틴러브스토리는 이미 최태경 회장님을 6년 전에 포기하게 만들어 와불상을 만들었는데, 고작 하산 길 1시간 남짓 짧은 동행의 작업이 통할 리 만무였다. 그래도 마지막 마주앉은 밥상머리에서 꺼져가는 불씨라도 살려볼까 전전긍긍하던 마음으로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기심어린 눈초리로 지켜보면서 ‘그래, 은행 두 알은 그쪽으로 갔으니 한 개라도 챙겨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믿음을 뒤로하고 그렇게 눈독을 들이던 닭똥집마저 연적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급기야 김형재사장님으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울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하산 길의 맨 뒤에서 홀로 외로움을 곱씹으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힘들어 하시던 H님.
식탁위에서 챙겨주시는 J님의 보양백숙, 푹 익은 은행 두 알과 살 오른 닭똥집이 김형재 사장님의 따가운 눈총을 가로막는 철갑방패였으니 오늘의 힘든 산행의 마지막을 웃음으로 날려버리게 하신 H님과 J님의 순애보가 지금까지 1323회 이어진 출판산악회보다 더 길게 이어지길 기원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김형재 사장님의 염장(?)을 지른다.
큰 웃음을 주신 김형재 사장님 감사합니다.
끝으로 오늘 산행에 함께하신 김유영, 김현호, 김형재, 이석범, 이정일, 장정화, 천승배, 최태경, 허진, 홍사용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와 함께 간만의 산행으로 힘겨웠던 컨디션을 한방토종닭 보양백숙으로 해소시켜주신 최태경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