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토요산행기

[1297회]가지산 산행기 - 매주 산삼을 보내주시는 분들

1993.01.01 Views 35 이석범

매주 수요일경이면 어김없이 산삼 한 뿌리를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그런데 이 산삼은 그 장소 그 시간에 도착한 사람에게만 특권이 주어진다.

웬 뜬금없이 산삼타령인가 하시겠지만, 언젠가 제주도 경영자세미나에서 특강을 해주신 어느 의학박사님은 지금까지 발견된 운동 중 사람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단연 등산이 최고라고 단언했다. 다행히 평소 산을 좋아하던 나는 자주 산행을 한 편이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마라톤이나 다른 운동을 시작하고부터는 등산을 게을리 했다.

그런데 지난봄 박연사장과 한영문화사 홍사장님의 손에 이끌려 신길동 오상환사장님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맛난 삼계탕 뇌물공세(?)에 넘어가고 말았다. 무슨 종이를 내주시면서 작성하시라고 하기에 아무생각없이 덜컥 출판인산악회 입회원서를 작성하였지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주 인사동에서 열린 최태경 회장님 사진전 관람을 겸한 북악산, 인왕산 등반을 시작으로 산악회에 첫발을 내밀었다.

최태경회장님께는 지난번 책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표창을 축하 해 드렸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다른 일로 참석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있던 참인데 마침 사진전이 열리는 인사동으로 가서 멋진 사진전을 관람했다. 언제 그렇게 멋진 사진술까지 터득하셨는지 존경심과 부러움이 가슴가득 들어찬다. 늦었지만 대통령상 표창과 사진전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린다.

얘기가 옆으로 샜다. 그렇다. 등산-한발 한발 산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도심에서 찌든 심신을 정화시키는 산행을 통해 산삼보다 더 좋은 보약을 챙겨야겠다는 결심이었다.

-1297회 11월 01일 04:30분 합정역2번 출구. 가지산(도립공원)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임순재 총무-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고 다시 산악대장이신 이병덕사장님이 전화까지 하여 귀한보약을 손수 챙겨 주시고자하는 마음에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그런데 등산복이나 배낭 등 뭐하나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는 상태라서 은근히 걱정되어 산악대장님한테 자문을 구하니 겨울옷으로 모두 챙겨오란다.

겨울용은 전혀 없는 상태라서 부랴부랴 금요일에 틈을 내어 사무실 근처 합정동에 소재한 코오롱 상설할인매장을 찾아 이것저것 몇 가지 안 되는 장비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훌쩍 오십여 만원이 넘는다. 

토요일 밤 3시에 시계를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간만의 장거리 여행의 기대와 행여 실수로 늦잠이라도 자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잠을 설치게 되었다.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2시 40분경이다. 비몽사몽 조금 더 눈을 부칠까 망설이다가 집사람 몰래 이불속을 빠져나와 주방 냉장고를 열어 사과 한 개와 우유한잔을 마시고는 욕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뜨거운물에 샤워를 하고는 대충 면도를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간밤에 작은방 구석에 준비해둔 배낭과 준비물을 챙겨 도둑 고양이처럼 현관을 빠져나왔다.

차를 몰고 뻥 뚫린 자유로에 접어드니 모처럼 고속으로 내 달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합정동에 도착하니 채 4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사무실근처에 주차를 하고 약속장소인 합정역 2번 출구에 다다르니 아무도 없다. 혹시 장소를 잘못알고 있는지 몰라 메시지를 검색해보니 틀림없는 약속장소다.

여간해선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는 터라 근처를 기웃거리니 마침 만두집이 보인다. 안에 들어서니 이미 김경희님과 김성옥님이 김밥에 오뎅을 드시는 중이다. 가다가 중간 휴게소에서 아침식사 시간이 있다는 말씀에 더 이상 주문하지 않고 남겨주시는 음식을 사양도 없이 해치우니 제법 배가 든든하다.

잠시 후 사자자리와 전갈자리 등 별자리가 멋지게 그려진 대한여행사 (KTB)의 파란색 관광버스 도착하였고 삼삼오오모여 있던 일행은 속속 버스에 올랐다. 

































 

45인승 넓은 버스엔 14명의 일행이 승차하여 침대버스나 다름없는 호강을 누리며 정확하게 04시 30분 합정역을 출발하여 가지산으로 출발했다. 양화대교를 지나 올림픽대로를 지나자 이병덕 산악대장님이 인사말 말미에 느닷없이 처음 온 나 더러 산행일지를 쓰란다. 아무런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대로 쓰라는 말에 다소 안심은 되었지만 어디 세상을 살면서 무엇 하나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는 삶이 있던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니 나중에 쓰겠다는 정중하고도 옹골찬 반대의견은  민주주의라는 다수결의 횡포(?) 속에 묻히면서 결국 1일 르포작가로 당선되었다. 수중에 메모지도 펜도 없는 삭막함에 공연히 마음만 분주하다.

자욱한 안개 속을 뚫고 달리던 버스에서 잠을 자두는 것이 산삼보다 더 좋다는 예전의 산행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는 있지만 잠은 샤워하고 잠옷입고 침대에서 자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덜떨어진 체질을 타고난 탓에 잠을 청할수록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는 이놈의 못된 버릇은 오늘도 여지없이 고개를 쳐든다.

짙은 안개로 한치 앞을 분간 못하는 시계에도 경험 두둑한 기사양반은 안전하게 구름 위를 사뿐히 내달리고 있다. 수시로 애꿎은 시계만 내려다보니 어느새 2시간을 달려 아침 6시 32분 문경휴게소에 도착한다.

들어간 게 있으면 반드시 나오는 것이 생리. 잠시 해우소에 들어가 근심을 털어버리고 차로 향했지만 아직도 자욱한 안개로 휴게소 이쪽에서 저쪽 끝이 분간하기 어려운 오리무중이다.




1시간 정도를 더 달려 칠곡휴게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7시 32분이다. 죽 늘어선 배식 행렬 맨 끝에 줄지어 서서 식판에 먹고 싶은 음식을 주섬주섬 챙겨 담아 식탁으로 오니 보기완 달리 제법 양도 많고 내용도 충실하다. 하지만 산악대장님으로부터 식사대금 고지를 듣고는 예사롭지 않은 식대에 세상은 역시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원두커피를 홀짝이며 버스에 올라 다시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동쪽언저리 어둠과 짙은 안개를 뚫고 어느새 태양의 강렬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지방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니 주변 여기저기에 작고 앙증맞은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와 집집마다 감나무 가지가 휘어지게 열린 감을 보니 탐스러움과 풍요로움에 마음마저 흡족해진다.

09시 27분 -  드디어 버스는 목적지인 가지산 입구(석남사 정문)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산악대장님의 특명을 받아 임순재 총무님이 전투식량(김밥) 수송 작전에 투입되고 우리들은 식수와 각자의 장비를 챙겼다. 나 또한 상점에 들어가 귤 1봉지와 생수 4통을 구입하여 2통은 배낭에 챙기고 나머지 2통은 다른 분에게 드렸다.

잠시 후 김밥이 도착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가르릉 대는 버스의 힘겨운 호흡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능선 길을 올랐다. 하지만 노선착오로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다시 좁은 정상에서 산악대장님이 길을 물어 가까스로 정상에서 회차를 하여 목표하던 길을 확보했다.



10시 12분 - 가지산 호박소 계곡에 우리를 토해놓은 버스는 다시 다음 접선 장소인 석남사로 향했다.




10시 15분 - 출발전 기념촬영을 마치고 이병덕 대장님의 “호박소-구룡소폭포-능선분기점-가지산정상-쌀바위-귀바위-석남사”에 이르는 오늘의 작전지시에 따라 정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다.


10시 24분 - 가지산 입구 도착하여 스트레칭을 하고는 최종 장비 점검을 하였다.


10시 28분 - 드디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고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10시 40분 - 구룡소 폭포 앞에 도착했으나 계속되는 가뭄 탓에 흐르는 물은 오줌 누는 소년동상의 오줌 줄기처럼 한쪽 면을 졸졸 흐를 뿐이다. 이병덕 대장님이 암벽을 타고 올라가라는 지시로 먼저 허진사장님이 암벽의 노면을 확인하였으나 미끄러운 관계로 우회로로 결정 다시 정상등산로로 이동하여 오르기로 한다. 하지만 산악대장과 허진 사장은 마치 다람쥐처럼 바위에 달라붙어 잘도 오른다.






10시 53분 - 능선분기점에 도착하니 이리저리 등산로를 안내하는 이정표 앞에서 오상환사장님의 특별지시를 어길 수 없어 가지산의 지명을 가지산에서 "ㅈ지산"으로 개명했다.- 아직 법원에서 개명허가 안 떨어짐^^*




11시 58분 - 어느새 저 멀리 눈앞에 펼쳐진 가지산 정상에는 오밀조밀 등산객들이 보인다.




12시 5분 - 가지산 정상 주변이 너무 복잡할 것 같다는 대장님의 명령으로 턱밑에 있는 명당터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중식을 하기로 결정하고 각자 준비한 간식과 함께 맛있는 김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13시 15분 - 오상환 사장님의 멋진 칼 솜씨로 태어난 과일 디저트(감, 사과)를 먹고 가지산 정상으로 출발한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이련가” 사방에 드넓게 펼쳐져 자생하는 멋진 억새풀 밭을 지나 가지산 정상으로 향한다.





13시 25분 - 가지산 정상(1,240미터)에서 다른 분에게 부탁하여 모두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13시 59분 - 쌀 바위에 도착함.

이제 본격적인 하산 길에 접어들자 허진사장님의 스틱사용법 특강이 이어졌다. 등산에서 특히 장거리나 내리막에서 스틱의 요긴함과 스틱이 그렇게 비싼제품인 줄을 처음 알았다.





14시 41분 - 상운산(1,114미터)정상 도착, 얼마 안남은 석남사까지만 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남은 식량을 모두 소비하였다. 헉 그런데 한참을 내려가 이정표를 보니 아직도 석남사까지의 거리는 2키로 미터나 남았다.






16시 15분 - 힘겹게 석남사 후문에 도착하니 석남사는 여기저기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다.
삼층 석가 사리탑을 지나고  부처님 품으로 들어가는 해탈의 문을 지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오작교를 지나고 가을 냄새가 짙게 풍기는 석남사를 뒤로하고



16시 30분 - 석남사(석남상가 앞) 주차장 앞에 도착하였다.



16시 40분 - 드디어 오늘 산행이 모두  끝나고 석남사 상가 1호점에서 언양의 특산물인 미나리에 파전과 함께 마신 막걸리 한 잔은 그간의 노고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모두 한 잔 씩 건배를 한다.

이렇게 모두의 완벽한 팀워크로 오늘 산행은 무사고로 마감되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음식맛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양의 또 하나 특산물인 언양불고기를 맛보기 위해 식당으로 행했다. 저녁식사시간으로는 다소 이른 시간이라서 준비가 덜 된 탓인지 다소 서비스가 소홀하다. 하지만 언양 최고의 특산물 언양불고기에 폭탄주로 오늘의 완전한 가지산 등반을 축하하면서 건배를 올렸다.

매주 산을 오르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 나 또한 간만에 모든 상념에서 벗어나 그동안 매주 보내주는 산삼을 마다하고 이젠 직접 캐서 복용하는 심마니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런 행복감을 안겨주신, 그날 산행을 하면서 함께 호흡을 나누신 분들께 깊은 감사드린다.

또한 갑자기 복용한 산삼에 분에 넘치는 약효가 몸에 퍼지면서 이상반응이 나타나 상경하는 버스에서 벌어진 무례한 행동을 고스란히 받아넘겨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어설픈 심마니의 산삼과다 복용으로 빚어진 과오를 널리 용서하시길 빕니다.

산행회원 : 천승배, 임춘환, 오상환, 진학범, 황보태수, 허영심, 이병덕, 변오례, 김경희, 김성옥,  임순재, 허진, 이석범(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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