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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4회] 한북정맥 11구간 솔고개~숫돌고개 산행기
1993.01.01 Views 28 황보태수
작년 10월13일 구기동 김밥집에서 홍사룡 사장님을 우연히 만나 북한산 토요산행에 합류하면서 한국출판인산악회와 인연을 맺었다. 오늘이 딱 1년이다. 가나다순으로 산행 후기를 쓸 때가 되었고, 이왕이면 1주년에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산행후기를 자청했다. 지난 번 산행 후기는 얼떨결에 맡았고, 다시 어쭙잖은 산행 후기를 쓰게 되었다. 홍사룡 사장님과 회장님을 비롯한 산악회 회원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초보자 티를 벗고 7~8시간짜리 산 꾼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남한 땅의 빅3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차례로 올랐다. 릿지도 배우고, 내년이면 백두대간을 시작한다. 홀로 산행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모든 게 한국출판인산악회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나를 데리고 다니며 산을 가르쳐 줄 것인가? 출판인산악회를 통해 좋은 산, 좋은 사람, 좋은 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산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이 산악회도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반겨준다.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가면 되니까. 내겐 참으로 즐거운 구속이다.
다시 한 번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개인적으로 허진 사장님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예비 백두대간 7기랍시고 이산저산 끌고 다니며 죽자고 고생시킨 산행 길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오늘은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이다. 솔 고개에서 삼송리까지. 아직 1구간이 더 남아있지만 산악회 차원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구간이다. 나중에 자원자들 몇몇이서 남은 12구간을 마무리하겠다는 게 홍 대장님 생각이다. 오늘 집결시간은 평소보다 1시간을 앞당겼다. 집결지인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12시30분이었다. 회원들과 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송 기사님의 차량에 탑승해 솔 고개로 향했다. 버스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편하게 솔 고개에 도착했다. 홍 대장님과 집행부의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오늘의 들머리는 솔 고개에 있는 노고산 예비군훈련장 담벼락을 끼고 있는 골목길이다. 옛날에 예비군 훈련받으러 몇 번 왔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송 기사님의 차량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주택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노고산 자락에 단독주택 몇 채가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송 기사님이 남은 회원을 데리려 간 사이 1차로 도착한 회원들은 산행준비하면서 밤나무 그늘에서 장경화 회원님이 준비한 삶은 밤을 하나씩 나눠 먹고 있었다.
“밤 따 먹지 마세요. 주인 있는 밤나무예요.”
주택의 옥상에서 한 아낙네가 고함을 질렀다. 아니 웬 날벼락!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더니, 밤나무 밑에서도 밤을 먹지 말라는 속담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햇살을 피하기 위해 그늘로 들어가니 바람이 서늘하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은 아니지만 조금씩 초록을 벗어던지는 나뭇잎들에는 추색이 완연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오늘은 여름과 가을 사이의 길목을 걸어가는 산행이다.
13시10분 나머지 회원들을 태운 차량이 도착했다. 13시15분 곧장 산자락을 타고 올라갔다. 좁은 산길을 따라 일렬종대 행진이다. 누군가 앞에서 번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인원점검이다. 하나, 둘, 셋, 넷, ------ 스물다섯. 산행인원으로는 거의 인파 수준이다. 작년 7월에 시작한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을 자축하기 위해 회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고마운 일이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따라 긴 행렬이 이어졌다.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산기슭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모습이 장관이다.












왼쪽의 군부대 철망을 따라 급경사의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작은 산 치고는 초반 산행이 만만치가 않다.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육산이라 흙길을 밟는 발바닥에는 푹신한 느낌이 전해온다. 13시55분 능선길에 도착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능선 바람에 땀을 식혔다.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출발했다. 얼마 안가서 비포장 군사도로로 내려섰다. 멀리 노고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이 정상에 있는 군부대까지 이어진 길인 모양이다.
14시25분 정상에 있는 군부대 정문에 도착했다. 군사도로는 여기서 끝이다. 더 이상 길이 없다. 군부대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선두에 선 김형재 사장님이 여기저기를 살피며 길을 찾았다. 부대 정문 바로 아래 좌측의 울타리 한쪽에 길이 나 있다. 건너편에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지르자 김 사장님 왈, 조금 더 가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봐야 북한산의 제 맛을 알 수 있다며 길을 재촉한다.
김 사장님은 어떻게 모르는 산이 없으시나?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오랜 산행 경험 탓이리라. 한북정맥을 따라다니는 동안에도 김 사장님은 산세를 살피어 길을 찾고, 홍 대장님을 주로 지도에 의지한 독도법으로 길을 찾아 안내한다. 두 분의 주장이 맞부딪치는 경우가 때때로 있지만 길을 잃은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두 분이 입씨름을 할 때 나머지 회원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된다. 두 분 판단이 다 맞기 때문이다. 이리 가도 맞고, 저리 가도 맞다. 어차피 길은 하나로 통하니까.
14시30분 정상아래 헬기장에 도착했다. 오른쪽 노고산 정상에 군대 막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군부대가 산 정상을 통째로 차지한 경우는 별로 보지를 못했는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고산 정상의 반대편에는 북한산의 위용이 한눈에 펼쳐진다. 북한산의 뒷자태를 이렇게 한눈에 보기는 처음이다. 정말 장관이다.
오른쪽 끝에서부터 불광동 수리봉, 비봉, 문수봉 등 능선이 쭉 이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솟구친 백운대 양쪽에 인수봉과 만경대가 거대한 암봉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영봉을 지나 도봉산 정상과 오봉이 펼쳐진다. 백운대를 정점으로 능선을 따라 흘러내린 상장능선, 원효능선, 의상능선이 울퉁불퉁한 튀어나온 억센 근육질처럼 느껴진다. “저기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바위 능선이 하나 보이지요. 저게 숨은 벽입니다. 백운대 정면에서 보이지 않으니까 숨은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허진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숨은 벽의 내력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한북정맥 산행은 밋밋한 대신해 북한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만만치가 않다. 구파발에서 의정부까지 이어지는 송추길을 사이에 두고 북한산과 노고산이 대칭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에 산행이 끝날 때까지 복한산의 위용과 함께 할 것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점심 겸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14시 41분 헬기장을 출발해 3분 정도 걸어가니까 갈림길의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정표에 한북정맥은 조금 가다가 왼쪽 길로 가라고 볼펜으로 적어놓았다. 선두가 왼쪽으로 접어드는 바람에 모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10분 남짓 내려가다가 김 사장님이 아무래도 이상한 모양이다. 지도를 꺼내 보고 산세를 보면 이 길이 맞는데 이상하다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흥국사 표시가 되어 있는 내리막길은 하산길이 분명했다. 아야야~를 외쳐도 대답이 없다. 김 사장님이 홍 대장님의 전화를 받고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오니 16시였다. 진성민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남짓 알바를 했다. 힘든 산행이 아니고 산세가 단순했기에 망정이니 고생 꽤나 할 뻔했다.
16시15분에 다른 회원들과 합류를 했다. 알바를 축하한다고 난리다. 김 사장님은 자기가 선두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누가 선두에서 먼저 왼쪽길로 접어들었나?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하는 수 없이 이정표에다 엉뚱한 표시를 해놓은 어떤 인간을 가해자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산온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출발해 16시30분 옥녀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옥녀봉에 올라가니 군 초소가 있고 초병이 경계근무 중이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임도~숫돌고개를 향해 직진했다. 내리막을 내려오니 철판 옹벽이 길게 설치되어 길을 막아놓았다. 옹벽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을 하다가 구파발과 일영을 잇는 349번 국도를 만났다. 고양시 오금동의 배내미 고개다. 여기까지가 노고산인 모양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후미가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고개를 가로질러 349번 국도를 줄지어 건너는 모습이 보인다.
17시 길을 건너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초입에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오솔길 2.7킬로미터. 이제부터는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폭에 길 양옆에는 나무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다. 호젓한 산책길을 걸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중간 중간에 운동시설과 정자가 설치되어 쉬어가게끔 해놓았다.
오솔길이 끝나고 좁은 포장도로로 내려왔다. 김 사장님이 다시 지도를 꺼내들었다. 배수장을 찾아라. 족구장으로 사용하는 듯한 넓은 공터를 왔다 갔다 하며 배수장을 찾았다. 배수장 왼쪽으로 접어들어 족구장을 지나 직진했다.
10분 남짓 산길을 따라 걷는데 차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온다. 1번국도(일명 통일로)에 내려섰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군부대 정문이 바로 보인다. 회원들이 다 길가로 내려서자 건너편 군부대 정문에서 김 사장님이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 완주를 기념하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군부대 왼쪽길로 들어서서 삼송리 주택가를 지나 지하철 3호선 삼송리역에 도착했다.
18시였다.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중천에 떠 있다.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 기웃기웃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낮과 밤의 아름다운 공존이다. 이제 만찬장인 연신내 ‘왔다 아구찜’ 식당으로 가야 한다. 한북정맥 완주를 기념하는 뒤풀이를 해야 한다. 무엇을 기념하는 잔치란 항상 사람을 들뜨게 한다.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 산행에 참석해주신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16개월에 걸친 산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자축합시다.”
“한북정맥 전 구간을 다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을 비롯해 산악회 회원들의 뜨거운 참여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홍사룡 대장님과 김현호 사장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흥겨운 만찬이 시작되었다. 1차는 김현호 사장님께서 쏘시고, 2차 노래방은 홍 대장님이 책임지시기로 했다. 두 분 사장님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놀았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