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토요산행기

[1281회] 한북정맥 9차 8구간 4고개 산행기

1993.01.01 Views 38 김형재

이번 주 1281회 산행은 한북정맥 8구간인데 산행 등록한 회원이 7명으로 저조한 이유는 피서철이라 가족과 함께하는 회원들이 참석을 못하는 이유 때문으로 이해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자녀들이 성장한 회원들은 공감할 것이다. 8구간은 서울에 가까워 일반 교통을 이용하여 의정부역으로 집결지가 공지되어 있다.

의정부역은 배차시간이 20여분 간격을 감안하여 서둘러 용산역에 도착했는데 운 좋게 전차가 도착해 기다리지 않고 승차해 집결지에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는데 먼저 온 박연, 옵서버 안사장, 김현호, 오랜만에 참석한 박홍재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서 홍사룡 대장 장정화, 김윤배, 임순재 총무, 오상환 전 총무까지 10명이 합류하였다.

등록하지 않은 회원이 4명 중에 박연 백두대간 6기 총무와 함께온 안사장 손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홍대장과 산행 출발점을 의논하는데 7구간 종점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차편이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현장에서 합류한다는 김유영 회원이 늦어 택시로 가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고 임 총무가 전하기에 전화를 받아 위치를 확인해 보니 터널 옆 모텔쪽이라고 해서 이산가족 될 확률이 높아 우리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 축석령 3거리로 오라고 유도했다.

거의 같은 시간에 2차 집결지에서 11명이 모두 합류하였다. 8구간 종점에서 시작은 거리도 있고 차도가 피서차량으로 지체되어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한구간이 지난 귀락터널에서 시작하는데 터널 위에는 안내 리본이 있는데 예상 방향에는 리본이 없고, 가시덤풀 숲이 우거진 길을 찾느라 10분이상 헤매면서 반팔이라 가시에 상처를 입었다.








비가 온 후라 선발대는 옷이 모두 젖어 오지만 봉사 한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찾았는데 홍대장은 생각이 달랐다. 처음길을 정확한 코스로 산행하려면 산 입구까지 가는 도로는 행정지도(등고선과 주봉 높이만 있다)가 필요하고 산에 진입한 후에는 산행개념도(00봉 마다 높이, 임로, 고개, 주변 건물 상세표시)가 필요하다. 홍대장은 내가 신뢰하는 개념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방식의 등고선만 고집하는 탓으로 가끔 충돌하는데 그 때마다 결과가 답을 해 주었고 내 판단이 옳았다.

결국 모두 홍대장 뒤를 따라가는데... 나도 따라가 보니 결국 원점으로 회귀했다. 다시 축석교회를 찾아 뒷길로 가보니 결국 내가 가려고 했던 길로 갔으면 이리로 오게되어 있었다. 본격적인 한북정맥 코스로 산행하는데 크지 않은 토종 소나무들이 촉촉이 젖은 습기와 함께 소나무 향을 마시며 첫 번째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길 안내 표지 위치가 비정상으로 박혀 안내 글자를 보려면 길 반대쪽으로 가야 볼 수 있다. 시시한 야산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기로 했다.



이 능선은 천보산 주 능선으로 287, 255, 245, 235 봉을 지나면서 대부분 낮은 야산으로 산보다 오리동고개-덕고개-막은고개-샘내고개까지 4개의 고개가 포인트다. 낮은봉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그럴듯해 보여 회원들 모습을 디카에 담고 가는데 박연 대간총무가 선두 서기를 권한다. 홍대장 속도로는 지체한 시간을 만회할 수 없다 생각하고 선두에서 속도를 가속했다. 등산 개념도에는 천보산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와 후미를 기다리면서 선두는 휴식을 취했다.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12시가 지난 시간이다. 간식은 먹었지만 아침을 먹지 않은 회원들은 시장기가 요동칠만하다. 후미가 도착하고, 민생고를 해결하려면 민가로 가야한다. 홍대장과 식사문제를 해결하려면 민가로 가야한다고 합의하고 하산하다보니 민가가 보여 해장국집에서 묵밥이 특식이라고 모두 통일 주문하여 먹는데 난 처음 먹는 묵밥이 별로다.



오늘 옵서버로 처음 참석한 안사장님이 신고식을 위한 것인가? 간식과 식사, 반찬 막걸리 2병까지 준비가 다양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하면서 천보산 기를 받고 온 막걸리 1잔이 취기가 올라 온 몸이 달아오르니 현장의 술을 내가 모두 마신 것 같아 기념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금기를 깼다고 한다. 나는 여기가 산이 아니라 먹었다고 항변하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반겨준다.

오늘 참석한 회원들은 하나 같이 비 오기를 기대하면서 무더위보다 한결 좋다고 산행중에 민가에서 망중한을 보내기는 한북정맥에서 처음이다. 여기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게일 것 같지 않고 각자 준비한 비옷과 우산으로 무장하고 사라진 한북정맥을 찾아 한동안 소나무 숲을 지나니 전망이 확 트이는데 정맥이 끊기는 절개지 위에서 전방을 보니 황토색의 택지개발하는 벌판이 나타났다.



드디어 오늘의 미로코스 앞에 서서 인터넷 검색상황을 상기하면서 절개지가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나침판도 없다. 오직 육감으로 방향을 잡고 덕현초등학교 덕고개를 찾아가야 한다. 그 동안 경험이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육감을 살려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택지 조성중이라 길이 없는 절개지를 오르내리면서 1km 정도 질러가다 보니 단지 중앙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육감의 방향과 맞는 것 같다.



긴 중앙로를 따라 한동안 가다가 전방에 건물들이 보이고 이쯤에서 덕현 초등학교 위치를 물으면 될 것 같은데 비가 오니 주민을 만날 수가 없다. 안 사장님이 민가로 찾아가 알아 본 결과 내 방향감각 육감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헤매지 않고 덕현초교 옆 덕고개 버스정류장 대기소에서 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빗줄기는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전체 11명 중 선두그룹 9명은 함께 도착해 무더위가 아닌 한기를 느끼면서 후미 2명을 기다리는데 박연 대간 총무가 홍대장과 휴대폰으로 위치를 파악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현장 답사 경험이 있는 홍대장이기에 안심은 되어 1시간 이상 기다린 끝에 다시 합류하여 정맥을 찾아 가는데 곳곳에 택지 개발로 파헤친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전방이 가려 방향 찾기가 어려워지겠다.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려고 홍대장은 쉬지도 않고 앞장서서 갈길을 제촉한다. 막은 고개를 찾아 산 능선에 오르니 반가운 안내 표시가 우리를 반기고 선배들의 흔적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전에는 우리 산악회 이름으로 리본을 만들어 적절한 곳에 배치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자신감 때문인지? 리본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코스 중에 가장 넓고 확실한 길이 나타나고, 한 참 후에 9657부대 3중 철조망이 나타나고 철조망 따라 오르고 내리는 능선을 4~5번 오른 끝에 개념도에 표시된 쉼터가 나타났다. 우리의 목표지점 샘내 고개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니 모두 반가워 다시 쉬면서 오늘의 대표사진 기념사진을 촬영하는데 임 총무가 산악회 기를 꺼내어 촬영하다.



김유영 회원은 대형 훌라훌프를 오상환 회원은 줄넘기를 하면서 남은 체력을 과시한다. 마지막 하산코스를 10여분 지나니 전방이 확트이는 묘지 위에서 산북동 건물들이 한 눈에 보인다 건물 건너편에는 9구간 도락산 능선이 보인다. 지나고 보니 묘지에서 능선 따라 도로를 경유해야 하는데 아파트단지로 들어가 주민에게 길을 물어 철도를 건너는 길도 지상 고가도로가 아닌 철로 밑으로 통과하는 지하도를 이용해야 한다.

지하도를 통과해 300m 직진하고, 3거리에서 좌회전 300m 위치에 주유소 건너편이 한북정맥 9구간이 시작되는 샘내고개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오늘 목표산행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다. 의정부 방향으로 1km 정도 가다가 규모 있는 음식집에서 돼지갈비에 막걸리로 피로를 푸는데 11명중 비주류가 더 많아 술판이 약해진 느낌이다.



끝으로 오늘은 우중 산행으로 더위를 모른체 8구간이 완료되어 먼저 한 9구간으로 이어지면서 중간에 빠진 구간 없이 1구간부터 9구간이 완료되어 이제 사패산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산행은 임순재 총무가 참석으로 집행부를 대표하여 모양세가 좋았다. 오늘 산행후기도 결국은 내 몫으로 원치 않는 낙찰이 되었는데 김씨에서 다음 박씨로 바톤 터치가 지난 금수산 후기에서 이루어진 상태인데 다시 김씨로 회귀한 셈이다.

식당차로 양주역에 도착하여 전철에 승차 했을 때부터 우리와 떨어진 경로석에 술 취한 분이 우산으로 의자를 때리는 액션이 있었는데... 모 회원은 내 목소리가 커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왜냐면 떨어져 있었고, 우리만 탔다고 장정화 회원이 전화를 받고 여럿이 이야기 했고, 나만 말한게 아니였는데... 내 탓이라니? 직접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면 나도 놀랐다. 이후 오상환 전 총무와 장시간 대화했는데 그 소리를 옆에서 들었는지 묻고 싶다. 못들었다면 평상심에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다는 증거죠.

나는 느끼지 못하는데 크게 들린다면 그 때는 대화가 안 되거나 열받으면 커지나 본데... 과거 우리 산악회 여성회원들이 나의 별명을 부처라고 지어주었다. 그 정도로 말이 없는 사람이 왜 변했을까? 내 목소리가 듣는 사람이 불쾌할 정도라면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목소리가 컷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커진거고, 그 영향은 산에서 우리 일행과의 연락 수단으로 사용한 구호 아이야~야~야 야를 가장 많이 외치면서 훈련된 탓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앞으로 자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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