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올랐을까 이곳이 산촌임을 말해 주는 두들 마을이 나타난다. 산 중턱에 신기하게도 몇몇 가구가 모인 마을이다. 추측컨대 약초를 캐서 살아가거나, 토종벌을 키우지 않았을까, 산행 중에는 인적이 없어 알 수 없었지만 경사 급한 곳에 자급을 위한 한평 밭이 지금도 생활의 터전임을 그대로 보여주며, 또한 이들의 소박함도 말하고 있었다.
오디와 산딸기를 하나씩 따서 먹으며, 약 1시간만에 도착한 장인봉이 청량산의 주봉(해발 870m)이다. 주봉을 2-3분 더 가서 있는 전망대에 오른다. 아래로 거침없는 풍광이 시원하다. 중간에 들렸던 두들마을의 산채 지붕이 호젓하게 눈에 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늘 주봉은 산행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몇몇의 회원들은 생략하고 지나가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시간이 여유로워 모두들 함께 했으면 했는데 선두권 회원들의 배려가 약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한가지 아쉬움은 자소봉 이전의 사진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천승배 부회장님과 오상환 사장님, 허진 회원님의 카메라에는 혹 이쪽의 풍광이 남아 있으려나?
청량산은 자고로 아기자기하여 곳곳에 숨은 봉우리와 역사적이 이야기가 많이 내재되어 있는 산이라 경치와 역사적인 일화 및 배경을 알면 더욱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 청량산 ------------------------------------
주봉인 장인봉의 높이가 870m로,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솟은 청량산은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경북의 소금강이라 불렸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ㆍ선학봉ㆍ자란봉ㆍ자소봉ㆍ탁필봉ㆍ연적봉ㆍ연화봉ㆍ향로봉ㆍ경일봉ㆍ금탑봉ㆍ축융봉 등 12봉우리(육육봉)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으며, 봉우리마다 어풍대ㆍ밀성대ㆍ풍형대ㆍ학소대ㆍ금가대ㆍ원효대ㆍ반야대ㆍ만월대ㆍ자비대ㆍ청풍대ㆍ송풍대ㆍ의상대 등의 대(臺)가 있다.
산속에는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으며, 27개의 사찰과 암자 터가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유리보전), 신라시대에 창건한 외청량사(응진전),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공민왕이 쌓았다는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청량정사) 등 역사적 유적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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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봉을 지나 선학봉에서 자란봉으로 이어진 하늘다리에 도착한다.
올 봄에 완성한 이 다리는 봉화군에서 정책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건축한 것으로 군청의 기획이 성공한 것인지 많은 산행객들로 붐빈다.
말 한마디도 조용하게 하지 않는 경상도 산행객들은 어떤 풍경에서도 왁자지껄이다. 왠지 사람이 없고 호젓해야 어울릴 것 같은 청량산의 운치와 맛이 조금은 이들로 인해 빼앗긴 것 같아 아쉽다.그러나 산 길과도 같은 험한 인생 길에 벗들과 함께 약간은 왁자지껄한 이 순간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즐겁고 청량한 잠깐의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도 어느 순간부턴 왁자지껄이다. 인생의 위안은 별거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걸...... 잠깐의 위안을 뒤로 하고 우리는 산행길을 걷고 걸어서 또 어디로들 가야하는가? 고달픈 인생길과도 같이 말이다. 결국 누구나 혼자가 아닐까? 외로움이 아닐까? 이곳을 찾은 산행객들이거나 우리 모두는 항상 이 외로움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청량산을 타향사람들에게 소문 내지 않고
"숨겨 놓고 오래도록 우리끼리 보고 싶다"고 한단다.
이러한 감정은 옛날 퇴계 이황의 생각에서 출발한다.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올라
“청량산 육육봉(12봉우리)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 뿐이며 어부(漁夫)가 알까 하노라“
라고 노래했단다. 무엇이 이렇듯 청량산을 아끼고 오래도록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을까?
청량산의 12봉우리를 하루에 다 돌 수는 없어 우리 산악회는 다음 봉우리인 자소봉에 오른다. 오르는 봉마다 따로 전망대를 설치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전망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3개의 능선을 넘으면 바로 나의 고향 마을인 방향도 대략 둘러 살핀다. 이런 곳에서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한동안 보냈다니!!! 어느 한 문학평론가가 이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고향이 농어촌 아니면 전통적 민심을 체화해서 표현하기가 어려워 좋은 글쟁이 자격이 없다” 했다. 한때 나는 봉화같은 깡촌에서 나고 자란 것을 이런 말에 기대어 위안 삼은 적도 있으니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스운 기억이라고 해야하나......
자소봉에서 멀리 전경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하산길에 지난번 문경에서도 목격했던 송진을 체취한 심각한 흉터를 가진 소나무들이 이곳에서도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쓰린 역사의 일부를 항상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산골짜기에서도 말이다. 징한 역사의 흔적이다.
이런 생각을 할 즈음 김생굴에 도착하여 옛 선비의 공부를 향한 끝임없는 자숙과 인고의 정신을 상상해 본다. 이런 깊은 산속에서 김생은 무엇을 위해 세속에서 멀리 스스로를 가두어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까?
잠시 후 우린 청량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청량사와 청량산의 자태에 감탄을 토해낸다. 정말 아늑하고, 아름답다. 천혜의 명당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요즈음은 1년에 한번씩 산상음악회를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그 어떤 시설 좋은 인공적인 공연장도 이에 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음악이거나, 애절한 음악이거나, 비장한 음악이거나 한동안 우리 눈앞에서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가락들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잠시 후 지나는 산행객들을 벗삼아 산에 사는 한분의 찻집에 들어선다. 누구에게나 9가지 약초로 다린 차를 무료로 대접한다는 그분은 항상 이렇게 산악인들을 반기듯이 계셨다. 퇴계가 공부했다는 오산당을 옆에 두고 퇴계를 흠모하여 닮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어느 한 겨울 인생을 탐험하듯이 청량산의 눈길 산행과 부침이 심한 인생을 돌고돌다 이곳에 오면 따뜻한 차와 함께 주인장과 많은 이야기가 가능할 듯 싶은 이곳, 언젠가 다시 한번 오고 싶다.
청량사 경내로 들어선다. 많은 내방객들로 인해 붐비는 곳이다. 여느 사찰보다 경사진 터에 자리잡은 이 곳은 저절로 자연과 합일된 느낌이 더 느껴지는 곳이다. 뒤로는 탁일봉을 등에 두고 깍아지른 암릉이 있고, 양쪽에는 자연 그자체로 아름다운 병풍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왜들 이 곳을 발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모르게 혼자서 감상하고 싶은 곳이라고들 했는지, 나 또한 비로소 그런 생각에 동감하면서.... ‘진짜 좋구나.....’ 를 연발한다.
청량산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루에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12봉우리와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역사적인 유적과 아름다운 장소들이 너무나 많아 그도 그럴 것이다. 많은 인물들이 깊고 깊은 이곳으로 왜 들어오려 했을까? 크게 부족한 대답이지만 일단은 ‘외로움마저 이길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라고 그에 대한 답을 적어 두자. 오죽하면 공주와 결혼했던 원효대사가 속세를 떠나 이곳에서 청량사를 짓고 도에 정진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도 하다.
청량산(山), 청량사(寺) ......
혼탁한 세상에서 한참은 멀찍이 떨어진 이곳....
역사의 인물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나,
한 바가지 청량수를
찾듯이 세상을 떠나 이곳으로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까?
산행을 마친 우리는 모두 이러한 선문(禪門)에 대한 답을 찾듯이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정말 공부가 하고픈 절경이다. 서원 초입에 어떤 부모가 퇴계에게 자식을 맡기며 지어준 별채에서조차 옛 사람들의 자식 사랑과 학문에 대한 욕심이 아름답게 생각된다. 우리 회원들과 함께 나는 오늘 많은 공부를 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도산서원을 나선다.
청량산, 청량사, 도산서원
다음에는 조용히 외로움과 함께 한번 더 오리라......
--- 개인적으로 저의 고향동네라서 맛있는 특산음식과 더 많은 안내를 해 드렸어야 했는데 저 또한 청량산행이 처음이라 회원님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산행을 즐겼습니다. 도산서원은 2번째이긴 하지만 말이죠. 특히 대표적인 산촌인 봉화에는 특별한 별미 음식이 부족하고 거친 산나물과 연관된 음식이 대부분이라 회원 모두에게 혹 결례가 되지 않았나 걱정도 됩니다. 그곳에서는 1년 중 늦 겨울(1-2월)에 보성 숯불돼지구이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택했던 저녁 식사 매뉴에 모두들 부족하나마 맛있게 드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