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평화누리길
[1830회] 평화누리길 종주 첫번째코스
2019.01.19 Views 95 박찬익
2019년 1월 19일 낭만산행/평화누리길 제1코스
이정일
*산행지 : 평화누리길 제1코스
*날씨 : 맑으나 미세먼지 나쁨(영하 3도에서 영상 8도)
*동행인 : 박찬익, 이수길, 이정일, 이정수, 조은상, 최태경, 오상환, 부길만, 임순재, 박연, 장 정화, 허영심, 강주연, 채호기, 김호중, 김현호, 이문학, 정재원 (이상18명)
*산행시간 : 4시간 10분(휴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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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김포함상공원/평화누리길 제1코스 출발
10:30~10:40 덕포진/쉼터~사적292호/초가진지(포진)~‘다’포진(기와포진)~파수청 터
10:43 손돌묘
11:03 덕포
11:24 쇄암리 출렁다리
11:38 고란초 표지목
12:00~12:10 염하39 초소전망대
12:18~12:25 고양쉼터/전망대
13:15~13:23 군교육장/화장실
14:10 문수산성 남문 제2코스 출발지점/산행 제1코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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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17:10 김포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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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부터 낭만산행은 평화누리길 종주이다. 역사와 문화예술, 평화의 소중함을 학습하고 탐방하기 위함이다. 예상외로 많은 회원들이 호응하고 또 참여 의사를 밝혀주어 모처럼만에 활기를 띤다. 아침 8시 30분, 남부터미널 1번 출구에서 박연, 박찬익, 부길만, 이정수, 이정일 등 5명이 만나 간식으로 떡을 구입하여, 합정역 8번 출구에 도착하니 9명이 더 합류한다. 평화누리길은 경기도 지방만 임진강 철책 길 따라 제14코스까지 연결되어 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나쁨단계’이어서 일까. 초지대교로 향하는 한강 뚝방도로는 희뿌연 미세먼지가 자욱하여 100m앞도 구분하기 힘들다. 25인승 승합차는 일행 16명을 태우고 9시 45분에 초지대교 앞 김포함상공원에 도착한다. 원래는 함상공원도 30분 정도 탐방할 예정이었는데 무료입장이 아니어서 포기하고, 평화누리길 제1코스 앞에서 단체 인증사진을 찍는다. 이때 이문학(한국출판학회 회장)교수 내외분이 도착하면서 모두가 18명이 출발한다.
평화누리길 제1코스는 약 14~16km의 ‘염하강 철책길’이다. 초지대교를 건너기 전의 대명항은 인천과 강화를 오가는 유일한 나루터였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제1코스는 김포함상공원 입구 맞은편에서부터 시작된다. 함상공원의 거대한 운봉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오키나와 상륙작전에 참가하였고, 월남파병에도 참여하는 등 우리와 함께 해 왔던 함정이라는 데, 아쉽게도 답사는 하지 못하고 정각 10시에 제1코스를 출발한다.
아치조형물로 만든 평화누리길 간판을 지나 왼쪽 편으로 넓은 강줄기를 따라 걷는 코스이다. 첨예했던 남북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길을 처음으로 걷는 심정은 가볍지 않고 왠지 무겁다. 관리 당국에서도 이런 심정을 이해하는건지 곳곳에 앙증맞고 귀여운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담에 그림을 그려놓아 옴츠려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애쓴듯하다. 나무데크계단과 포장, 비포장도로를 번갈아가다보면 군데군데 오른쪽으로 강변 농촌마을이 한가롭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포인트는 바다와 같은 넓은 강줄기에 길게 늘어선 철책이다.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6.25전쟁 이후 설치했다는데, 초소엔 경비병이 없다. 요즘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우리만 섣부른 무장해제 아닐까하여 괜한 염려가 된다. 10시30분에 조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덕포진’에 도착한다. 사적 제292호인 덕포진은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손돌목’일원이다. 조선말인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때에도 나라를 방어한 곳이다.
손돌(孫乭)은 1232년 고려 때 고종이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하였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손돌(孫乭)이라는 사공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사공은 물살이 급한 곳으로 노를 젓는다. 보다 못한 임금은 물살이 약한 곳으로 뱃길을 바꾸도록 명령했으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급기야 임금은 사공을 의심하고 참수를 명한다. 손돌이 목숨을 거두면서 ‘이 바가지를 띄워 뱃길을 잡아라.’ 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뒤 바가지를 물에 띄우자 거센 물결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바가지를 따라 해협을 무사히 빠져 강화에 도착한 임금은 자기가 경솔하였음을 뒤늦게 후회하고 손돌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었다고 한다. 이곳 덕포진 끝자락에 손돌을 위로하는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고, 또 왼쪽 편 강가 언덕에는 손돌묘가 자리 잡아 오늘도 염하강을 내려다보며 덕포진을 지키고 있다.
돈대와 포대 중심부에는 화살 불씨를 보관하는 ‘파수청’이라는 지휘소 터도 있고, 잔디밭 진지는 초가진지와 기와진지로 구축하여 흥미를 더한다. 1시간 가까이 걷다 보니 긴장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철조망도 평범한 가림 망처럼 느껴진다.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널따란 갯벌과 건너편 강화도, 지덕이 좋아 선박과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덕포’는 지금은 제한적 어로를 하고 있다. ‘덕포’ 표지목을 지나고, 쇄암리(碎岩里)의 낮은 출렁다리를 건넌다.
쇄암리(碎岩里)라면 돌 공장이라도 있을까 하고 둘러보아도 돌을 깎는 공장은 없다. 다만 ‘높은 언덕’이라는 뜻의 원모루나루터가 눈앞이다. 주로 새우를 잡아 팔았던 포구였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기선이 정기적으로 이곳을 드나들면서 왜놈들이 곡물을 약탈해 가던 슬픈 역사도 지닌 곳이다. 낮은 지대의 철조망을 가다보니 ‘고란초’라는 표지목이 있다. 부여의 고란사를 연상하는 고란초는 난초과에 속하는 난초의 일종이다. 11시 38분이다.
그리고 11시 50분에 안부에 올라서니 양지바른 곳에 공동묘지가 유난히 따뜻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최태경 님을 비롯한 대원들이 속속 따른다. 조금만 더 가면 전망대 쉼터가 있으니까 그곳에서 간식을 먹자고 해도 마이동풍이다. ‘하필이면 남의 공동묘지에서 먹을게 뭐람.’ 2시간 쯤 걷고 보니 벌써 지쳤는가. 제일 원로이신 이수길 님과 나는 곧바로 직진하여 ‘염하’39 쉼터에서 후미를 기다렸다가 다시 12시 18분에 전망대/쉼터에 도착한다.
겨울철이어서 전망대 쉼터의 문은 꼭꼭 잠겨있고 화장실도 폐쇄되었다. 제1코스는 간식꺼리도 장만 할 가게가 없다. 인적도 드문 전망대는 염하강만 무심히 바라보며 한산하다. 염하강(鹽河江)의 어원이 아리송하다. 바닷물이 짠(鹽)것은 어디 여기뿐이랴. 이 넓은 강을 왜 좁은 의미의 ‘하(河)’자는 넣었을까. 고양쉼터와 군교육장을 지나면서 오부회장은 오른쪽 김포CC에서 굴러 나온 골프공을 한 보따리 주워온다. 골프공도 부자 집을 알아보는 걸까.
문수산성 남문 제2코스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14시 10분이다. 전부 4시간 10분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건너편 식당에서 막걸리 소주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이른 상경을 하려니 모두가 아쉬운 듯 다시 김포조각공원으로 핸들을 돌린다. 얕은 소공원인줄 알았는데, 왕복 1시간 30분이 걸어야 산책길이다. 산릉 요소요소마다 특색 있는 조각품을 설치한 곳, 우린 여기서 40분간의 워킹을 끝내고 17시 10분에 상경길에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