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1291회] 한북정(지)맥 11차 10구간 도봉산 산행기 (작성자 : 황보태수)

2008.09.30 Views 78 피아트


[1291회] 한북정(지)맥 11차 10구간 도봉산 산행기 (작성자 : 황보태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직 취기가 가시질 않았다. 산행 전날은 조심하는데 과음한 모양이다.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고 스스로 변명을 하면서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래도 오늘은 묵밥이 있지 않은가. 묵밥으로 속을 달래면 좀 나아지겠지. 나름 즐거운 상상을 하며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11시10분이었다. 10분 지각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앞세우고 박연 사장님을 비롯한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다.


늦은 시간 탓인지 비 예보 탓인지 등산객들이 많지가 않다. 34번 버스를 타고 달리는 내내 오른쪽 차창에 북한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의상능선, 원효능선, 노적봉, 백운대 등등 이런저런 능선과 암봉들이 줄지어 스쳐간다. 그냥 돌덩어리로만 알았던 북한산이 이제는 각자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산악회를 따라다닌 지 1년 만의 일이다. 아직은 대강의 얼개에 지나지 않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송추유원지를 지나 울대고개에서 하차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니까 오늘 한북정맥의 집결지인 묵밥식당이 나타났다. 오상환 사장님이 입에 거품을 물고 칭찬한 식당이다. 역시 묵밥 맛이 장난이 아니다(오 사장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속이 풀리면서 몸도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고 울대고개에서 홍사룡 사장님과 장남덕 소장님을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우중산행이 될 모양이다. 두 분이 1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예정보다 30분 늦은 출발이었다. 가벼운 수인사를 나누고 곧장 대로변의 사패산 들머리로 들어섰다.


사패산-도봉산 코스는 한 번 해보고 싶은 산행이었다. 6월에 솔고개에서 불광동까지 북한산 종주, 8월에 수락산-불암산 종주를 했으니까 이번 산행은 개인적으로 서울 5산종주인 불수사도북 종주의 완성인 셈이다. 3번에 걸쳐 잘라 붙이기는 했지만. 체력을 조금씩 길러서 다음에 사도북을 하고, 그 다음에 불수사도북을 하면 되지 뭐 어때. 속으로 이런저런 궁상을 떨면서 숲길을 걷는데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린다. 오늘은 땀을 좀 덜 흘리겠지. 대신 빗물이 몸을 적시겠지만 기분은 산뜻할 게다. 빗물에 마음의 찌꺼기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특히 비가 세차게 뿌리는 날 능선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쭉~ 걷는 맛은 뭔가 특별하다.

홍 대장님이 선두를 서고 뒤에서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늦은 출발 탓인지 선두가 속도를 내는 느낌이다. 오늘은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써야지.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땅만 보고 걸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지만 숲속 길이어서 별 느낌이 없다.


사패산 정상 아래 삼거리 고개에 도착했다. 2시였다(시간 기록은 추정치입니다. 산행 후기를 염두에 두지 않아 기록을 못했습니다). 쉬지 않고 1시간을 올라온 셈이다. 몇몇 회원은 사패산 정상으로 가고, 나머지 회원은 그냥 삼거리에서 기다렸다. 홍 대장님이 안 가는 걸로 봐서 사패산 정상은 한북정맥 줄기가 아닌 모양이다. 사패산 정상은 2번이나 밟아봤으니까 체력을 아껴야지.









이제부터 사패능선을 따라 걸어야 한다. 능선길을 걷는데 굵지 않은 빗방울이 드문드문 뿌리면서 땀과 뒤섞여 온몸을 적신다. 때때로 마주치는 바람이 온몸을 시원하게 휘감고는 능선 너머로 달아나버린다. 날씨가 덥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제격이다.

계단이 설치된 기다란 오르막을 올라 3시에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 평소와 달리 등산객이 많지 않다. 비가 뿌려대는 능선 왼쪽의 마들평야는 운무로 가득하다. 운무 저쪽 끝에서 수락산과 불암산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낼 뿐이다. 오른쪽의 북한산도 산자락은 운무에 묻히고 백운대를 비롯한 몇몇 암봉들만 멀리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포대능선인가. 포대능선벙커에서 일행과 합류한다는 김형재 사장님의 연락이 왔다. 김 사장님과 합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도봉산은 이번이 초행산행이다. 옛날부터 말만 듣던 도봉산 포대능선을 걸으며 해묵은 숙제도 해결했다. 4시가 채 못돼 벙커에 도착하니 김 사장님이 커다란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30분을 기다렸다며 산행시간이 늦었다고 타박을 들었다. 이상하다. 별로 휴식도 없이 줄곧 걸어왔는데. 혹시 우리가 출발을 12시에 한 것으로 계산하신 것은 아닌지. 어찌되었건 이곳에서 간식을 나눠먹으며 제대로 휴식을 취했다.


포대능선벙커를 출발해 김 사장님이 이끄는 대로 뒤따라가니 바윗길 내리막이 나타났다. Y계곡이라고 했다. 급경사인데다 쇠말뚝의 철책에 의지해 내려가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비에 젖은 바위도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중에 반대편 오르막에서 김윤배 사장님이 내려오는 게 아닌가. 아니 유령이 나타났나? 분명히 우리가 선두인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김 사장님 왈, 후미로 오다가 Y계곡을 우회하느라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역으로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맨발로 산을 다니는 이상한(?) 아저씨답다. 비도 오는데 우회하느라 지나쳤으면 그냥 갈 일이지. 웬 역주행이람.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 릿지길은 우회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해볼 만 하다는데 아래에서 쳐다보기로는 꽤 난이도가 있어 보였다. 자운봉, 만장봉, 신선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한 장을 찰깍!

오늘 한북정맥 산행의 최종 목적지를 놓고 홍 대장님이 고심하는 모습이다. 한북정맥의 정상코스는 우이암 아래에서 우이령으로 빠져 상장능선을 타고 솔고개까지 잇는 길이다. 그런데 우이령(일명 소귀고개)에 감시초소가 있고, 상장능선은 출입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으니 포기할 수밖에. 홍 대장님은 비도 오고 시간도 늦었다는 이유를 대며 우이동으로 하산길을 결정했다.

우이암에서 우이동 방향으로 내려오는 데 하산길이 생각보다 길었다. 우이암에서 5시30분에 출발해 하산을 서둘렀는데도 식당가의 날머리에 도착하니 오후 7시였다. 해가 완전히 떨어진 저녁이었다.


뒤풀이는 오리고기로 메뉴를 정하고 인근 식당에 자리 잡았다. 오늘 지각을 한 장남덕 소장님이 스스로 총대를 메고 뒤풀이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홍 대장님이 소맥 폭탄주를 한 잔씩 제조해 돌리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다른 회원들도 잔을 주고받으며 우중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홍 대장님은 다음 달이 한북정맥의 마지막 11구간(솔고개-고양시 삼송리)이라며 성대한 쫑파티을 약속하면서 많은 회원의 참석을 당부했다.


한북정맥 10구간 산행에 참석하신 모든 회원님들 고생하셨구요, 특히 장남덕 소장님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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