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제2기,한북정맥 제7구간 (큰넓고개~죽엽산~축석령까지)

2012.12.11 Views 105 산나리

한북정맥,제7구간 (큰넓고개~죽엽산~축석령까지)


...............언 제 ; 2012년 12월 1일 (서울 영하 -7도)
...............누구와 : 박종관, 부길만, 이병덕, 이정일, 전형기, 조은상, 천승배 (이상 7명)
...............산행시간 ; 6시간 10분
...............휴식, 식사 ; 시간 분

<07;10> 합정역 출발
<07;30> 잠수교 남단 U턴 지점
09;30 큰넓고개 출발
09;53 작은 넓고개
10;47 송신 탑
10;50 입산통제 현수막 (광릉임업시험장)
11;18~11;22 죽엽산
11;25~11;35 양지 능성에서 휴식
11;40 능성 분기점/우
11;50 임도
12;28~13;05 비득재/점심
13;25~13;30 통신기지국, 노고산(고모산)
13;45 임도(시멘트)
14;00 고개 사거리(산길)
14;10 종교 공원묘지 초입
14;20 군부대 펜스/좌
14;25 군부대 출입문
14;35~14;46 양지봉/휴식
14;53 다름고개/독립유공자 후손의 집 앞
15;20~15;30 동물이동통로 건너 알바 주의/우측
15;40 축석령 도착
<17;00~18;30> 일산 굴나라/박종관 님 로얄 21년 산
<18;40~23;10> 2차;송년 노래방


서울의 아침 기온이 금년 겨울 들어 제일 추운 영하 -5도의 날씨이다. 아침 7시 합정역, 7시 30분에 잠수교 남단 U턴 지점을 출발하여 포천 시내를 빠져나와 8시 40분 쯤 포천시 내촌면 진목사거리에 있는 ‘오림표 멧돼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처음엔 주인아줌마가 굳어 있는 듯하여 이리저리 농담을 해 보니, 이 외로 친절하고 음식도 깔끔하여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9시 30분이 못되어 큰넓고개에 내린다.

큰넓고개는 서울보다도 -2~3도는 더 낮은 날씨에 을씨년스럽고 쌀쌀하다. 더구나 서울에서 내린 엊저녁 비도 이곳에서는 하얀 눈으로 변해 4~5cm는 되나보다. 양력 12월 초하루, 올해 처음 밟아보는 눈길이다. 그러나 오늘코스는 알바 할 곳이 많으므로 선등자에게 주의해야 된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자그마한 산봉우리를 넘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30분 만에 ‘작은 넓고개’를 지난다.

잣나무, 낙엽송, 굴참나무 숲이 울창한 지역을 무심코 오르는데, 광릉임업시험장에서 걸어 놓은 ‘입산통제’란 현수막을 무시하고 20여분, 오늘의 메인 산봉우리인 죽엽산 정상에 선다. 그런데 제1차 한북정맥 때인 2008년 여름에도 필자가 이번 코스에 참석하여 죽엽산을 올랐는데 그때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천승배 회원님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겨울과 여름의 차이일까. 아니면 나이 탓, 또는 세월이 그만큼 흘렀음일까.

죽엽산은 조선의 학자 토정 이지함이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 내촌면 진목마을에 매년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급기야 이지함이 뒷산에 올라 산을 돌아보고 있는데, 마침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지함은 대나무 잎으로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덮어 준 후부터 수해가 줄고, 풍년이 들었다고 하여 ‘죽엽산’으로 부른다. 그런데 이곳 정상은 좁고 물이 솟을 만한 장소도 없는 데 어찌된 이야기인지?

능선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서니 비득재, 12시 30분이다. 배도 출출하다. 원래는 점심을 이곳에서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전형기 님이 새벽에 특별히 맞춤 주먹밥을 가져와 각자 나누어 주는 바람에 ‘산꾼 & 심마니’라는 식당(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732-3. T.031-541-0708번)에서 따뜻한 국물만을 부탁한다. 순박해 보이는 산꾼 심마니 구자익(?)씨는 귀찮은 내색도 없이 각별하게 신경을 써 준다. 아욱국에 싱싱한 김치와 전주지방에서 특별히 가져왔다는 막걸리를 곁들인다. 이 술은 막걸리 명인이 빚었다는 술이다. 모처럼 만에 사람 사는 정을 느끼며 오후 1시를 넘어 이 집을 나선다.

노고산 정상에 있는 통신 기지국을 지나니 고모리산성에 대한 설명이 있다. 고모리에서 직동리로 통하는 고개 비득재(해발 254m)에 위치한 고모산(일명:노고산 해발 380m)의 고모리산성은 고모산 정상부와 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현재 대부분 붕괴되어 정확한 성벽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우나, 전체 둘레는 822m이고 대부분 흙으로 쌓은 토성이란다. 고모리산성은 북으로 철원, 포천일대와 남으로 한강일대를 연결하는 통로를 장악하기 편리한 고대 군사 요충지로 볼 수 있다.

시멘트 임도를 넘어 공원묘지 초입에 들어서니 2008년도에 왔던 기억이 이제 서야 새롭다. 10여 분간이나 공원묘지를 가다가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부대 앞 출입문을 통과하고, 그리고 양지바른 봉에서 간식을 취한다. ‘다름고개’에서 ‘독립유공자 후손의 집’이란 큰 대문 앞을 지나는데, 어느 후손이기에 이렇게 집안 자랑을 하는 건지?

다시 군부대 울타리를 오른편으로 따른다. 막바지 길인 듯 하다. 오후 1시 5분쯤, 나는 계속 군부대 철조망을 따르고, 나머지 대원들은 곧바로 왼쪽으로 내려선다. 알바로 판단되어 호출을 유도하였으나 그냥 내려가겠단다.

오후 1시20분, 축석령 동물이동통로를 건너자마자 시그널은 오른편으로 꺾어 큰 대로변을 따른다. 조금 후 이병덕 총무와 다시 합류하여 목적지 축석령에 도착하니 15시 40분이다.

축석령은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吳伯周)라는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향에 계신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오백주는 벼슬을 버린 채 고향에 돌아왔다. 그가 열심히 부친의 병간호를 하던 중 석밀(石蜜)을 먹이면 낫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온 산을 헤매다가 호랑이를 만난다. 그는 호랑이 앞에서 ‘내가 죽으면 부친을 누가 돌본단 말인가’ 하며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왔다. 이 석밀로 부친의 병이 나으니 사람들은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었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 불렀다.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祝石嶺)이라고 하였다는 곳이다.

서둘러 승합차를 보내 알바 대원들을 데려와서 일산 ‘굴나라’로 달린다. 박종관 님이 며칠 전에 맞긴 로얄 살루트 21년생 때문에 기분이 상승되어 2차 노래방까지 가는 바람에 11시가 넘어서야 거나한 송년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늘 등산도 6시간 10분 정도 하였는데, 2차 시간도 6시간 10분이 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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